ε♡з예림의집으로ε♡з/자유게시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림의집 2008. 9. 16. 08:26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찰스M쉘돈 (Charles M.shejdon)이 쓴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고  

내 자신이 목사라는 것 때문에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 자책에 시달렸다.

책속에 나오는 맥스웰 목사는

미국의 유명한 신학교 출신의 엘리트 목사이며  레이몬시에서 성도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안락하게 생활하는 목사였다. 그는 늘 멋진 설교를 위하여 준비하고 노력하는 목사였다.

그런데 어느날  가난 때문에 아내와 하나밖에 없는 자식마저 읽고 일자리 없이 좌절과 슬픔에 사로잡혀 있는 인쇄공의 외침과 요절하는 비극적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며 설교자로서 성도로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지 못하면서  공허한 말로서 책임을 말하고 그것으로서 자신은 할 일을 다 했다고 떳떳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래서 다음 주일날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생활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이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을 하게 된다.

토요일 날 멋진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맥스웰 목사에게  찾아온 행색이 초라한 한 젊은이가 “목사님 저는 직장을 잃었습니다. 목사님이라면 제게 일거리 같은 것을 마련하여 주실 것 같아서... ”하자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구려 요즘 직장이 하도 귀해서...” 하며 문을 닫으려 하자 “그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는 철도 일이나 상점일이나 목장일 정도는 주선하여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하였다.
“‘아무런 도움을 되어 드리지 못하여 미안합니다.  더구나 나는 지금 몹시 바쁩니다. 당신 스스로 일자리를 구했으면 합니다” 하고 이층 서재에 올라와서  창문으로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몰골이 초라하고 남루한 옷을 차려 입은 청년은 누더기 같은 색 바랜 모자를 눌러 쓰고  떨어지는 낙엽위로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맥스웰목사는 멋진 설교 작성을 위하여 다시금 온힘을 쏟아 붇는다.

그는 희생으로 우리를 사랑 하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강조하며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자 라고 3단계를 제시하려고 준비 하였다.

주일 아침이 되었다.

그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쾌청한 날씨에 최고의 설교는 온 청중들에게 희열을 넘치게 하였다.
맥스웰목사 역시 설교에 대한 만족감에 기분이 충천하였다.
그래서 막 성경을 덮으려 하였고 성가대가 마지막 찬송을 하려고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한 청년이 걸어 나오다가 예배당 앞까지 오더니 교인들을 향하여  말을 열어 갔다.
“예배가 끝나기 전에 꼭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미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헤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얼마 못가서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기 모인 훌륭한 분들에게 한말씀 드리고 죽으면 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10개월 전에 직장을 잃었다는 이야기며 그것 때문에 처자식과 헤어져 살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 다음 “제가 뒷자리에 앉았을 때  목사님께서 ‘예수를 따르자’라고 부르짖었는데 과연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대로 일까? 하고 의심스러웠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따르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목사님은 기독교 신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발 자취를 따라야 하며 그 발자취란? 곧 ‘순종, 믿음,사랑 그리고 모방’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라’라는 진짜 의미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 도시를  사흘 동안 샅샅이 헤매면서 일자리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저에게 위로나 동정을 해 주신 분은 저 목사님 뿐 이었습니다.  모두 다 쳐다보지도 거들 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비렁뱅이로 시달렸습니다

여러분 제가 누구를 원망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다만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을 뒤따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와 함께 가려 네” 찬송은 부르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행적을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이 도시에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500명이 더 될 것입니다. 그들은 거의 가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저의 아내는 5개월 전에 죽었습니다, 제 딸은 인쇄공 집에서 더부살이 하고 있습니다. 딸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설교를 들으면서도  찬송을 부르면서도 자신들은 호화롭게 살면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아내가 숨을 거둔 집의 주인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 주인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였을까요?“ 하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이내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이야기는 저자 찰스M쉘돈 (Charles M.shejdon)이 목사가 되기 전에 실직한 인쇄공 행색을 하여 시가지를 헤맬 때 기독교인들과 목사들의 무관심을 보고 충격을 받아 쓴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도 민망 할 정도로 사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부끄러움이 온몸을 감싼다. 우리 총회는 800개교회가 채 안 되는 작은 군소 교단이다. 그러나 대회적으로 이미지만은 어느 교단 못지  않은 clear한 교단으로 실력 있는 인재들이 많은 교단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하면 몸은 작으나 내용이 있는 교단이라는 의미를 부여 받은 교단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총회에서 총회장을 뽑을 때 금품이 오가지 않는다고 그리고 윤리적으로 다른 교단 보다 좀 낫다고 그것으로 교단이 가지는 내용의 정체성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노회 사회 구제부장을 맡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무엇을 할 것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노회 상비부 구제 부장 자리라는 것은 명목상 자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하는 자리이다. 정치부나 고시부 처럼 어떤 조금의 권한도 없는 자리이고 노회가 구제 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해 주는 곳도 아니다.

그나마 약한 교회의 지원도 정치부와 재정부에서 관리함으로 할 일이 없는 자리이다.
그러나 무언가는 해야 된다는 것 때문에 노회원들의 형편을 암암리 조사하여 보았다.
그러나다  곧 포기하였다.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목사 가정들, 자녀들 교육 때문에 빗 더미에 앉아 있는 모습들   교회 임대료를 낼 수 없어서  울상인 교회들 기본적인 생활마져도 할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메어 와서 더는 조사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떤 목회자들은 대리운전을 어떤 이는 택시 운전을 그리고 어떤 사모님은 파출부를...등등  
이들에게 아무런 힘도 못되어 주면서  이들의 가슴만 쑤셔서 괴롭게 하는 꼴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다른 총회에서는 이런 목회자들에  대하여 어떻게 할까  조사하여 보았다.
H교단은 뾰족한 묘한이 없어서 그런지 시기 3년째 연구 중이고 T교단은 큰 교회가 인근의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책임져 주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노회에서 우리교단도 “목회자 최저 생활 생계비 대책 연구 위원회”를 신설하자고 헌의를 하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하나는 아직 나에게는 재정에 대한 대안이 없었다. 다만 ‘만들어 놓고 연구해보자’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허울 좋은 위원회로 전락하면 어떨까? 하는 것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틀림없이 반대하는 회원들이 있을 것이다. 였다.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노회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노회의 흐름을 아는 터라 반대자의 목소리에 뭍혀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시기상조다” “누가 그 많은 재원을 부담 하느냐” “우리 교단은 감당 할 만한 능력이 없다.”등등 .. 이 말들이 설득력을 얻어 갔다. 우려대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고 끝날 것 같아 보였다. 안타까웠다.  ‘최저 생계도 못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위하여 연구하는 위원회라도 설치하여 연구하면서 대안을 만들어 가자는데 이런 것도 반대를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 분노 같은 것이 솟아 올라왔다.

그리하여 계속 설득하자 몇분들이 찬성 이야기를 해주어 반대 측 의견과 찬성 측 의견을 두고 가부을 물었다.
다행이 위원회를 만들자고 헌의하기로 한 찬성측이 많아서 우여 곡절 끝에 헌의하게 되었다. 얼마 후 교단신문에는  총회를 앞 두고 각노회에서 올라온 헌의 안중에서 “목회자 최저 생활 생계비 대책 연구 위원회”신설에 대한 헌의가 대표적인 헌의 안으로 뽑혀서 기사화 되었고 가을 총회에서 가결 되었다. 각 노회에서는 연구 위원을 한명씩 뽑아서 연구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기사를 보고  흥분이 되었다. 바로 가난한 목회자들에게 최저생계비를 나누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을 노회에서 재정에 대한  대안을 세워서 헌의를 하기로 생각하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
필자는 우울할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를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는 자주 이 성구를 읊어 본다. 그러면 다시 새롭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주가 주시는 평안과 희망이 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는 것을 느끼곤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그분은 언제나 나에게 희망을 주셨다.

그래서 3가지 대안을 가지고 노회에 임하였다.
상비부모임을 끝나고 각부 보고를 할 때 세가지 대안을 총회에 올려주기를 바라며 보고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반대하는 사람이 또 나타났다. 이러한 중대한 일을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대안이 없이 무조건 반대를 하기 때문에 필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세가지 대안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하여 나갔다. 노회원들은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 되었는지 다수가 찬성하여 주었고 필자를 “목회자 최저 생활 생계비 대책 연구 위원회” 위원으로 뽑아 주었다.

우리곁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는 우리의 동역자들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채워 주기 위하여 협력해야 하지 않는가?
타락한 기독교 정신에 과감하게 도전하여  온성도가 힘을 합쳐서  말로만 좋은 교단이 아닌 정말 좋은 교단의 모습을 한국 교회 앞에 내어 놓고  신앙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을 우리 주님은 좋아 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꼬꾸라진  실직자를 인쇄공 안은 맥스웰목사는“이 사람은 정말 나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그의 한마디는 나의 모든 삶의 철학을 무너트렸습니다. 이 사람의 말은 너무나 진실합니다. 우리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리라 믿습니다.”하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내가 내놓으려는 제안도 결코 황당무계 하거나 실현 불가능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 그리고 우리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모두 오해 없이 들으시기 바랍니다.”하고는 1년동안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자문 자답 하면서 이웃을 위하여 헌신 할 성도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서약하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여기에서는 필자가 아직 결정된 사항이 아니므로 세가지 대안을 명시는 할 수 없으나 우리교단이 형식과 내용을 갖춘 열매가 열리 것이라 믿고 온성도가 진지하게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 믿는다.

 

나두산목사(극동방송국 방송 진행자, “목회자 최저 생활 생계비 대책 연구 위원회” 위원, kidok.net 선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