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022. 12. 30. 11:33

아직 쓸모가 있는 나이

"4시간짜리 시간제 근무 구함!" 장소도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나이 불문이라는 문구였습니다. 길바닥에서 500원짜리 동전이라도 발견한 듯, 아니 제 앞으로 쪼르르 굴러온 행운이라도 만난 듯, 마음속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급한 마음에 얼른 전화를 했습니다. “구인광고 보고 전화했는데요. 알바 구하신다고 해서요.” 그런데, 상대가 제일 먼저 묻는 것은 역시 나이였습니다. “제 나이요? 올해.. 60인데요.”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뭔가 고민하던 상대는 “나이가 많으셔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기대감에 들떴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죄송하다는 그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일로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래서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집에서 멀지 않은 온천으로 목욕을 갔습니다. 축 처진 기분으로 카운터에서 표를 끊고 있는데, 건물 앞에 도착한 소형버스에서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내리더니 건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인솔자가 따로 있는 걸 보니, 어느 시골에서 온 단체 관광객인 모양이었습니다. 계산대 앞에서 손목에 차는 번호열쇠를 나눠준 직원이

“지금 갖고 계신 번호가 적혀있는 신발장 찾아 신발을 넣으시면 됩니다!”하고 안내했습니다. 하지만, 신발을 벗어든 어르신들은 높고 기다란 신발장 앞에서 우왕좌왕하기만 했습니다. 익숙지 않은 상황에, 다들 난감한 표정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제가 나서서 한 분 한 분 번호를 확인해서 신발장 안에 신발을 넣게 하고, 문 잠그는 법까지 알려드리고 나자, 여기저기서 ‘고맙다’는 소리가 쏟아졌습니다. “확실히 젊은 사람이 똑똑하고 빨라. 고마워요, 젊은 양반!” 젊다는 말에 뭔가 겸연쩍어진 저는 “저도 그렇게 젊진 않아요. 예순 살이나 된 걸요!”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러자, 어르신들은 이구동성, 육십이면 딱 좋은 나이라면서 부러워했습니다. 한 어른이 당신이 예순일 때, 집 앞 너른 밭고랑을 다 매고, 마늘농사며 감자농사를 혼자서 다 지었다고 무용담을 펼치자, 다른 분들도 앞다퉈서 “맞아, 그 나이 땐 펄펄 날아다녔어. 손자손녀들 다 돌봐주고..”하면서 자랑을 늘어놨습니다. 그분들이 보기에, 저는 한참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뭔가를 하기에 충분한 나이, 아직은 쓸모가 있는 나이라는 위로였습니다. 어르신들의 몇 마디 말씀이 하루 종일 귓가에서 맴돌며 제 마음을 위축시켰던 말들을 말끔히 씻어주었습니다.(이성실)

그렇습니다. 일반사회에서는 65세가 되어야 노인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70대가 되어도, 노인정에서는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터에서는 노인이라면서 퇴출하고 있으니, 이런 모순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아무튼, 나이에 어울리는 일감을 부지런히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일감에 딱 맞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돈 받지 않고 봉사하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대개는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일감을 찾고 있으니, 그것 또한 모순입니다. 아무쪼록 나이 많다고 기죽지 마시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