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엄마는 오빠 결혼식 이후 저의 박사 졸업식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하셨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들어준 "이제부터 이 박사"라는 팻말을 들고 활짝 웃으면서 졸업식 날 사진은 찍었지만,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마음 한쪽이 무거워 그 감격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랜 유학생활의 끝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소속 없음이라는 사실이 저를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친구들은 졸업 후에 어디 갈지 정하고서 학위를 받는데, "나는 왜 이리도 영리하지 못했을까? 달랑 논문 썼다고 이렇게 대책 없이 졸업해도 되나.." 하면서 불안해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석사과정 두 번에 박사과정까지, 그동안 내 인생의 3/4을 학생 신분으로 살았는데,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고 후 많이 아팠지만, 마치 모세시대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학업을 마치고 귀국을 앞둔 시점이 되니, 꼭 요단강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척박했지만 어느덧 익숙해진 곳,‘매일 아침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은혜가 있었던 유학생활이라는 광야를 뒤로 한 채, 이제 익숙지 않은 새로운 곳을 향하여 발을 내디뎌야 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이제 저도 넘실거리는 요단강에 발을 넣어야 했습니다. 그 앞에 서서, 저는 아직도 여전히 대단히 연약하고 작은 사람임을 확인했습니다.
너무 작은 사람이어서 속상했고 두려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지선 자매는 역경을 이겨냈으니 대단히 큰 사람일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그저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앞두고 두려워하면서 주저하는, 작고 연약한 한 영혼이라 생각하면서 기도해준 분들이 있습니다. 그처럼 기도해준, 그분들의 존재가 저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요단강 앞에 서서, 저는 저의 작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믿는 그분의 크심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른땅을 지나가게 하시리라"는 그 말씀을 믿을 뿐이었습니다.(이지선 교수)
이 세상엔 걱정거리가 별로 없는, 그래서 조금은 자만에 빠진 사람들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의에 갇혀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거의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적잖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있음을 알고 있을 때, 무척 의지가 되고 힘이 됩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실상임을, 우리는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