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것이 성령 충만
①성령 충만은 예수님으로 충만합니다.
②네 필요를 채워 주시는 예수님이 아닌,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의 고백으로 예수님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③"예수면 다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성령 충만함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령 충만에 대해 오해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을 방해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성령 충만한 것이, 이상한 말을 하며 미래를 맞히고, 목소리를 이상하게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성령 충만함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함을 간구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나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님으로 충만합니다.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은 내가 죽은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진짜로 내가 죽었음을 믿는 사람은 그 다음에 구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이 생명 되셨으니,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은 체험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생명이 필요했던 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필요 없었던 삶을 내가 되어 사시고 죽으셔서 완전한 대속이 되셨습니다. 그 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깨달으면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은 이 고백 위에 경험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이 보이신 놀라운 기적으로 시작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에게 떡과 물고기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이폰이 중요한 거싱 아니라, 문화상품권, 전교 1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하루를 먹을 약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열광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아이폰을 하나씩 나눠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은 이런 곳이다." 하시면서 외제차 한 대씩 나눠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에게 해당하는 더 정확한 말로 하면,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은 잘생긴 남자친구를 한 명씩 다 준 것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고 나만을 사랑해주는 정말 예쁜 여자 친구를 한 명씩 다 준 것입니다.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여러분이 내 삶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채워 주신 사건입니다. 외로움, 돈, 인기, 내가 인정받은 것,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채워 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떠나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내 살은 생명의 떡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너희들에게 생명을 주러 온 자"라고 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주러 너희에게 왔다고 하십니다.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이, 본인이 곧 죽을 거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역사와 함께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모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시는 음식과 예수님이 그들을 더 편하게 해 주실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것보다 예수님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시기 더욱 원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많은 살마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예수님도 당황했나 봅니다. 옆에 남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요한복음 6:67). 5,000명이 넘는 사람 중에서 제자들만 남고 다 떠났습니다. 예수님도 너무 당황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보다도 사랑하신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면도날로 가슴을 베는 듯한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열광하던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완전히 바뀐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은 성전 앞 미문의 앉은뱅이 거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사도행전 3:6)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했습니다. 복음의 영광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복음은 절대로 어렵지 않습니다. 진리는 분명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나'입니다. 그런 존재적 죄인인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생명 되신 예수님을 경험하게 되면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면 충분합니까? 이제 부족한 것이 없습니까?
필리핀 깜덴공동체교회의 선교사님이신 홍성욱 선교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늘 기억에 남습니다. 선교사님은 우리나라에 첫 사역으로 장애우를 섬기셨고, 두 번째 사역으로 필리핀에서 가장 못사는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첫 번째는 정상적으로 생활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었고, 두 번째는 세상에 못살아도 그렇게 못사는, 2, 3평 되는 곳에서 7, 8명의 가족이 함께 사는 필리핀 극빈층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늘 자신을 돕는 사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돈 주고, 자기에게 도움 주는 사람들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장애우, 극빈층들을 돕다가 가끔씩 한국 교회에 와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몸을 정상이고, 생활하는 집도 정상인데 장애인처럼, 도시의 빈민들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부족해 하고, 똑같이 굶주린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의 눈에는 마치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도 가지지 못해서 미쳐 버린 사람들처럼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있으면 탱큐, 없으면 그만!"
우리에게 생명 주신 예수님이면 내 삶은 충분할 겁니다. 앞으로 무엇인가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 외에 앞으로 우리에게 생가는 모든 것은 있으면 감사한 것입니다. 없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홍성욱 선교사님의 치아는 모두 틀니입니다. 우리나라 물은 깨끗하지만, 동남아 지역은 거의 석회물입니다. 이 물을 마시면 석회물질이 이를 가장 먼저 상하게 합니다. 이가 하나씩 빠집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빠지더니 다 빠졌답니다. 그래도 고백하십니다. 생명되신 예수님만 있으면, 치아는 있으면 탱큐, 없으면 그만! 최근 부모님에게 사달라고 심하게 졸라서 부모님을 힘들게 하거나, 부모님에게 서운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 사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없습니까?
순회선교단 김용의 선교사님은 한 설교에서 이렇게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네 놈의 목숨을 뺏겠다. 네 건물을 뺏겠다. 너의 조직을 와해시키겠다. 너의 모든 것을 빼앗겠다. 너 그래도 남은 거 있느냐?" 살아 있는 교회와 성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면 다다! 예수면 된다!"
가장 비참한 집구석에 태어나서 내 인생에 소망이 없던 시간에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나에게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기에, 그래서 '너'는 내가 너를 대신해 죽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기에 내게 오신 것입니다.
내 인생의 의미도, 가치도 없고,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왜 이 땅에 살아야 하는지를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던 그런 나에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그 말 한마디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햇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피조물인 나를 위해 생명을 내줬다는 사랑 표현 외에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너, 예수가 다냐?"라고 물으면 도저히 조용하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예수가 다다! 예수가 다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흔들리고, 부끄러운 시간들이 있었지만,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넘어졌지만, 그 현실보다 더 큰 것은 나를 사랑해서 십자가 져 주신 예수님이 결론입니다. 나는 주님에게 신실한 적이 없었어도 주님은 신실하셨습니다. 나는 주님과의 약속을 어긴 때가 있었지만, 주님은 나에게 한 약속을 단 한 구절도 어긴 적이 없으셨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감히 나의 나 된 것을 말하라면 주님의 은혜박에 없습니다. 나는 새끼손가락 하나도 주님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주님으로 충분한 이 놀라운 복음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8, 9절에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립보서 3:8, 9).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도 충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버리고 나서 아까워하고,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배설물은 똥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똥도 내 몸에서 나온거니 아깝고 아쉬워하면서 방 안에 차고차곡 모아 두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사도 바울은 그 시대의 모든 권력과 재물까지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소원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소원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충만하였고, 사도 바울의 소원도 역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며 생명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전도사니므이 간증입니다. 주님이 저에게도 "나 하나로 만족하느냐?"라고 물으셨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비싼 것이 있다면 카메라였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카메라와 렌즈를 사고 싶은 마음이 늘 저에게 있었습니다. 2010년 4월, 목회자 기도 모임에서 한 선교사님이 제 카메라를 유심히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처음 본 그분이 "전도사님, 이런 카메라는 얼마나 해요?"라고 부담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설명도 해드리고, 찍는 법도 알려드렸습니다. 선교사님의 선교 사역에 이 카메라가 필요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마음을 빨리 접었습니다. 문제는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이 이 고백들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너의 것 하나 없어도 만족한다고 하였지? 그런데 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필요로 하는데 흘려주지 않니?"
그리고 기도를 하다가 카메라를 들고 선교사님 기도하는 데 가서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님이 이 카메라를 선교사님에게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눈물이 났습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이 나에게 진짜처럼 느껴졋습니다. '이젠 진짜 내 삶에 나의 것 하나도 없는 거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말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전도사님, 귀한 만음 감사해요. 잘 쓸게요." 하시면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이 저를 위해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한참을 안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전도사님의 마음 중심을 시험하신 거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최근에 주님에게 드린 특벽한 고백이 있나요?" 그때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것으로 충분하며 앞으로 제 것 없는 삶을 살겠습니다." 선교사님이 저를 안아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합격하셨어요."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돌려 주시면 말슴하셨습니다. "마음이 합격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에게도 주님께서 언젠가 기도 중에 이렇게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람은 내 평생에 찬양하고 감사해도 부족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내 삶에 아무것도 주시자 않고, 아무런 일을 행하시지 안하도 그 십자가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주실 그 어떤 은혜와 선물도 내 안에 오신 예수님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 더럽고 더루운 내 마음에 나를 사랑하셔서 오신,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애수면 다냐?"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물었을 때, 여러분의 믿음을 고백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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