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후서와 유다서가 외경을 인용했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입장
대부분의 학자들이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에 대해 말한다. 심지어 많은 자들은 이 두 서신을 신약에서 가장 하잘 것 없는 책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평가를 받는 이 두 책은 신약에서 가장 무시되는 책으로 분류되며 심지어 ‘무명인 유다’라고 비아냥거리가 되기도 한다. 케제만은 그의 유명한 강의에서 베드로후서가 정경 가운데 가장 모호한 책이며 애초에 정경에 포함되지 않아야 했다고 말한다.
이 두 서신을 합쳐서 연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두 서신 사이에 겹치는 자료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서 계속해서 에세이 주제로 삼았던 것과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할 수 밖에 없다. 둘 중 어떤 것이 기초자료가 되었거나 아니면 두 책 모두 하나의 공통된 책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찾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연구하는 대부분의 현대학자들은 베드로후서가 유다서를 자료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 밖에 학자는 유다서와 베드로후서가 같은 자료를 사용하여 쓰여졌다고 이야기한다. 두 의견을 모두 수렴해 봤을 때 적어도 베드로후서가 유다서보다 선행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유다서가 외경을 사용하여 쓰여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적어도 베드로 후서가 원전이 되지 못한다면 유다서의 외경 사용은 베드로후서와 유다서 두 권 모두 외경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유다서와 관련된 외경에서 가장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모세의 가설’과 ‘에녹서’이다. 아마도 6절의 납달리의 유언과 8절의 아세르의 유언에서도 그 흔절을 찾을 수 있다.
에녹서는 주전 1세기에서 주후 1세기에 걸쳐 기록된 외경이다. 모세의 가설과 에녹서는 초대교회에서 높게 평가되었다. 유다가 그 책들을 성경으로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글을 쓰면서 이 두 책을 인용할 필요가 있었기에 쓰였다고 보여진다. 또한 그 당시의 독자들에게 에녹서와 모세의 가설이 낯선 것이 아니었기에 인용을 했을 것이다. 그 당시의 풍습과 환경은 성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바울도 당시의 이교철학의 이론을 인용한 흔적이 있다. 사도행전 17:28, 고전 15:32,33, 디도서 1:12절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교도의 글을 인용했다고 해서 그 입장을 바울이지지 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고전 10:4절에서는 랍비 마드리쉬의 작품을 인용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필로의 작품을 인용한 적이 많고 디모데 후서 에서는 얀네와 얌브네가 바로 앞에서 모세에게 도전했던 마술사라고 하는데 이 근거가 외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천사들이 율법을 주는 수단이라는 것도 그렇다. 갈라디아서 3:19, 히브리서 2:2, 사도행전 7:22, 야고보서 5:17 모두 외경을 인용한 것이다.
이러한 앞선 많은 전례가 있기에 유다서가 외경을 인용했기 때문에 정경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받아들여 질 수 없다. 이것은 논란 거리도 되지 않는다. 플러머는 말하기를 “유다는 아마 미가엘과 사탄사이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가 신화라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들에게 친숙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증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성경을 기록하는 영감된 저자라 할지라도 당시의 사회적 사상을 인용하는 것은 죄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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