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이방 신화적 설명에 대해 어떠한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요한계시록의 시대적 상황은 황제숭배 사상이 아주 넓게 나타나고 있을 때였다. 종교와 정치 간의 분리 현상을 지금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고대 세계에서 이러한 명확한 분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충성과 관련되어서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이며 황제의 신격화는 그 당시 황제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다. 황제 숭배는 곧 제국의 평화와 통합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당시 이방신에 대한 숭배는 황제에 대한 숭배와 일맥상통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상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였다. 우리는 복음서 안에서도 이러한 갈등의 증거들을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다.
소아시아에서 황제에 대한 충성의 문제가 더더욱 중요했다. 로마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황제에 대한 더욱더 강한 충성을 받아내는 것이 필요했다. 이에 대한 가장 공적인 방법은 신전에서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것이다. 당시의 로마는 임명한 총독을 통해 소아시아를 관리케 했기 때문에 총독의 지위는 지역 주민의 충성심을 이끌어낼수록 공고해졌다. 이렇기 때문에 로마 제국의 황제에 대한 신격화는 더 확실하게 일어났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을 중심으로 봤을 때 우리는 이러한 이방신에 대한 숭배를 차용한 듯한 설명을 많이 볼 수 있다. 제국을 여행할 때 황제는 많은 수행원과 조언자들을 대동하는데 관료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동 가능한 왕좌에 앉는다. 이러한 부분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장로들’이 보좌를 두르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또한 흰색 옷은 헬라에서 일반적으로 제의 때 입던 의복으로, 구약의 색이 있는 옷을 입은 제사장들과 대조된다. 금 면류관을 쓰고 이 면류관을 황제 앞에 던지는 것은 알렉산더 대왕 이래로 내려오는 헬라적 경배의 특징이다. 신약의 다른 면류관은 아마도 경기에서 이긴 자에게 주어진 월계수를 뜻하겠지만, 계시록 안에서의 면류관은 금면류관을 상징할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다른 곳에 나타난 하나님께 드리는 합창은 시편이나 초대교회의 찬양의 모습과는 다르다. 더 간단하고 반복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는 황제가 어떤 도시에 가까이 다가올 때 사람들이 소리치며 반복하여 불렀던 환호와 더 비슷하다.
이러한 표현을 차용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 요한이 말하려던 것은 아주 명확하다. 요한계시록 4-5장은 익숙한 구약의 풍성한 이미지들과 당시의 이방인들의 숭배와 황제에 대한 경의를 결합시킨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한 분만이 경배를 받으실 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동시에 1세기 세계에서 권력구조와 권력의 원천으로 인정되던 황제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강력한 권력으로 부임하고 있던 황제의 자리를 계시록 안에서 하나님과 치환함으로써 참된 권력자와 전능한 창조주에 대한 경배만이 옳은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은 분명히 특이한 책이기는 하지만 마냥 신비적으로 해석될 책이 아니다. 계시록에 대해서 수많은 이단들이 떠들고 있는 것은 모두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어 있다. 요한의 의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버티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성도들에게 알림에 있었다. 계시록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석할 때에 우리는 자의적인 해석의 오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성경 중 하나임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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