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해부
서론
대다수의 연구에 있어서 요한복음은, 복음서 기록의 과정, 복음서 저자의 신학, 요한 공동체의 특성과 배경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로 사용되어 왔다.
표준 비평방법에 의존하여, 대체로 요한 신학자들은 특징이나 자료층들이 텍스트 안에서 따로 떨어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긴장, 불일치, 또는 ‘아포리아’를 찾으면서 본문에 접근했다.
텍스트를 ‘창문’으로 접근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크리거는 텍스트가 ‘거울’이라는 은유를 제시한다. 이 모델은 텍스트의 의미가 거울과 관찰자 사이, 텍스트와 독자 사이 반대편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서 자료와 기원에 관한 문제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의미는, 텍스트를 하나의 전체로 읽으며 텍스트가 독자에게 요구하고 있는 정신적 활동을 하게 되는 경험 속에서 생성된다. 화자는 독자에게 저자의 시각을 전달하고, 기대치, 거리감과 친밀감을 확립하는 암호를 보내며, 독자가 일치감과 참여감을 느끼도록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화자의 주장과 이야기의 규범은, 독자가 그 이야기, 이야기의 서사적 세계, 또 이야기의 주인공이 독자가 살고 있는 ‘실제’ 세계에 대한 어떤 심오한 진리를 계시해 주고 있다는 것을 믿도록 호소하고, 신호를 보내며 도전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서사적 세계는 예수의 사역을 내다보는 창문도 아니고, 요한 공동체의 역사를 바라보기 위한 창문도 아니다. 최소한 근본적으로, 요한복음의 서사적 세계는 요한복음 저자의 문학적 창작물이다. 이전에 독자들이 접해 왔던 세계보다 더 ‘실제적’이거나 좀더 ‘실제’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텍스트는 독자로 하여금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다.
우리의 목표는 요한복음을 서사적 텍스트로 이해하고, 복음서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도록 돕는 데 있다.‘텍스트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라는 질문을 함으로써 요한복음 서사의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어떻게 독자를 개입시키고 어떻게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는가에 관한 질문을 의도하고 있다
모든 이야기는 말하는 자, 이야기, 청중을 전제하고 있다.
이야기 자체는 등장인물들, 사건들, 그리고 그 배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플롯(plot)은 주로 힘의 갈등과 등장인물들과의 갈등을 통해 구성되는데, 플롯 역시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데 있어서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내포 독자(implied reader)란 서사 세계 안으로 들어와서 내포 저자가 의도하는 대로 반응하도록 요청받는 모든 정신작용을 수행하는 독자로서 텍스트에 의해 정의된다. 예를 들어, 해설이 제시되어 있는 경우, 의도된 독자는 해설이 없다면 그 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등장인물, 장소, 관습, 용어들이 설명되어 있지 않는 경우, 해석자는 화자로부터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의도된 독자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내포 저자와 화자를 거의 분리시킬 수 없는 것처럼 내포 독자도 수화자와 거의 구별할 수 없다.
화자(話者)와 시점(視點)
실제 저자(The neal author). 요한복음의 실제 저자에 대한 정의는 불필요하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실제 저자는 수없이 많이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저자가 ‘자기 작품의 예술적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고 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저자의 윤리적 신념, 개념, 전제들’을 더욱 정확하게 추론할 수 있게 해주지만, 실제 저자의 관심사나 신학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내포 저자(The implied author). 내포 저자는 언제나 실제 저자와 구별되며 서사에 의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단순히 그것이 서사물이라는 이유 때문에 내포 저자를 가지고 있다. 웨인 부스는 내포저자를 이렇게 정의한다 “내포 저자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선택해 준다. 우리는 내포 저자를 이상적, 문학적으로 창조된 실제 저자의 변형이라고 추론한다.
화자와는 달리, 내포 저자는 목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절대로 독자와 직접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일이 없다. 내포 저자는 서사 저술 시 실제 저자가 결정한 선택의 총체이지만, 그는 샐제 저자(집필자)도 아니고 화자(말해주는 사람)도 아니다.
내포 저자는 서사에서 추론되어야 한다. 작품 전체는 실제로 혈과 육을 지닌 저자가 아니라 서사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예술가 또는 창조적 지성인 내포 저자에 대한 인상을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
화자(The narrator). 이야기를 서술하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는 하나의 수사학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화자는 이야기 속의 한 등장인물로 극화될 수도 있고, 극화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화자는 내포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또는 내포 저자의 시점과 다른 시점을 가진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통해서 말할 수도 있다. 또한 화자는 서사 속에 어느 정도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고 서사 속에서 화자의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화자가 독자에게 보다 명백하게 말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화자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감지할 수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화자가 극화되지 않고 내포 저자의 목소리롤 나타나고 있다. 화자는 서사 전체를 통해서 독자를 안내하며, 독자를 서사 세계와 그 세계에 살고 있는 등장인물들에게 소개하고,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관찰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
요한복음에서 화자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말해 주며, 서사의 흐름 중간에 끼여들어 독자에게 해설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간섭적인 존재이다. 화자가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보고 우리는 즉시 화자를 예수의 생애와 죽음의 의미로 인도해 주는 신뢰할 만한 안내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요한복음의 화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수사학적 장치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화자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
해설의 방법
화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는가, 서사 세계와 서사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언제 독자에게 말해 줄 것인가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마이어 스턴버그는 소개하거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러한 필수적인 정보를 “해설”(exposition)이라고 부른다. 그는 화자가 제시하는 해설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서사 전체에 분산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관찰했다. 해설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예비적으로 제시될 수도 있고,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 때까지 지연되어 서사의 뒷부분 어느 지점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요한의 전략은 연대기적이고, 예비적이며, 집약적인 해설의 표준에 거의 일치하고 있다. 화자는 집약적이며 다소 연대기적으로 배열된 해설 덩어리를 서언에 두고 있는데, 그 해설은 작품이 전개됨에 따라 믿을 만한 것으로 입증된다. 일반적으로 이것들은 요한복음의 각 장면들이나 전체적 구획을 소개하거나 결론 짓는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장면전환의 언급이나 설명적 언급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해설이 언제 나타나고 있는가 뿐만 아니라, 얼마나 주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서사가 독자에게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반응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화자는 독자에게 모든 결정적 정보를 말해 줄 수 도 없고, 아니면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독자가 사건을 해석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요한복음의 화자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도 아니고 고의적으로 정보를 숨기는 화자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핵심인물의 정체와 전개될 행위의 진행과정을 개괄함으로써 서사를 시작하고 있다. 처음부터 화자는 전지적 시점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 그래서 독자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즉시 제공받게 된다. 따라서 화자와 마찬가지로 독자도 요한복음에서 예수와 상호반응을 하고 있는 어떤 등장인물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시점 (Point of View)
제라르 즈네뜨와 보리스 우스펜스키는 화자와 시점에 관련된 문제들을 분명하게 해주고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될 특징들을 제시했다.
즈네뜨는 시점 또는 그가 선호하는 용어인 ‘초점화’가 주요 등장인물이나 전지적 저자에 의해 내부에서 이야기가 말해지고 있는가, 아니면 군소 등장인물이나 관찰자의 역할을 하는 저자에 의해 외부에서 말해지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이 둘 사이를 구별했다. 화자의 정체는 화자가 저자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이야기 내부의 어느 한 등장인물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우즈펜스키는 시점이 표현될 수 있는 다섯 가지 ‘국면’을 제시하여 주요 개념들을 재정리함으로써 시점 논의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점의 다섯 가지 국면은 의식적인 면(평가기준), 어법적인 면(언어형식), 공간적인 면(화자의 위치), 시간적인 면(화자의 시간), 심리적인 면(등장인물에 대한 내적, 외적 관찰)이다.
요한복음의 화자는 일반적으로 행위의 외부에 있는 사람인 3인칭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관찰자로서의 목소리가 줄 수 있는 효과를 제공한다는 것이 곧 분명해진다.
심리적 시점: 전지적(Psychological point of view: omniscient). 화자의 심리적 시점은 화자가 어떤 한 등장인물이 생각하고 느끼고, 의도하는 것에 대한 내면 관찰을 제공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관찰자도 줄 수 없는 내면 관찰을 독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화자는 전지하다.
화자의 지식 범위는 독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요한복음의 화자는 태초부터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야기가 전개되기 전에 이야기에서 무엇이 발생할지 알고 있다. 화자는, 예수가 모든 일들을 알고 있었다는 정보를 독자에게 전달해 주고, 예수의 말씀을 통해 그가 생각했고 의도했던 것을 다양한 위치에서 우리에게 말해 준다.
공간적 시점: 편재적 (Spatial point of view: omnipresent). 편재는 전지와 구별되지만, 종종 화자의 편재를 말할 때 그것은 전지와 관계가 있기도 하다. 요한복음 화자는 특정지역이나 인물집단에 제한받지 않고, 행위에 방해받지 않고 독자에게 관찰을 제시하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화자는 필요다다면 어느 곳이든지 존재할 수 있고 필요할 때는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러한 화자의 자유는 서사를 실제 사실과 같은 일의 기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정도를 감소 시키지만, 이러한 자유로 인한 모든 우려는 자유로 인해 더욱 증가된 화자의 권위와 서사의 함축적 의미에 의해 상쇄된다.
화자의 공간적 시점은 더 자세히 정의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화자는 예수와 제자들을 관찰하고 있는 위치에 있는 자로 추정되지만, 필요하다면 그는 그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석해 줄 수도 있는 자이다. 어디에나 편재하는 화자는 자신을 제자들과 같은 위치에 제한시키지 않고 제자들을 3인칭으로 언급함으로써 제자들과 약간 거리를 두기도 한다.
시간적 시점: 회고적(Temporal point of view: retrospective). 우리는 이미 화자가 회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화자는 어떤 등장인물의 시간적 시점에 국한 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 화자는 등장인물보다 미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또한 화자는 회고적으로 이야기를 말해 줄 수도 있는데, 즉 사실이 있기 이전에 그리고 등장인물이 알기 전에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를 독자에게 말해 줄 수도 있다. 또한 화자는 이러한 두 시점을 어느 정도 결합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화자의 시간감각은 한 등장인물의 시간감각일 수도 있고 화자 자신의 고유한 시간감각일 수도 있다.
넓은 의미로 볼 때. 저자의 시점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요한복음 화자는 기억, 성경해석, 전승과 부활 이후 초대교회의 결험의 결합, 성령의 임재에 대한 의식, 예수 사역 당시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읽어내기, 그리고 요한 공동체의 역사와 투쟁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 등의 회고적 시점으로부터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관찰을 함으로써 우리는 화자의 의식적 시점 또는 평가적 시점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시간적 시점에 관해 한 가지 요소를 더 고찰해야 한다.
의식적 시점: 신뢰할 만하며 입체경적(Ideological point of view: reliable and stereoscopic). 요한복음에서 화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스펜스키가 ‘의식적’ 또는 평가적 시점이라고 부르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편견없이 완벽하게 공정한 화자는 아무도 없다. 특히 전지하고, 편재하며, 무엇이든지 전달할 수 있는 개입적인 화자는 불가피하게 독자에게 어떤 등장인물, 주장, 사건들과 그것들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대하거나 멀리하도록 선입관을 갖게 한다. 또한 요한복음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어떤 중립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이는 화자의 기능이 독자에게 내포 저자의 의식적 또는 평가적 체계를 알기 쉽게 전달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자의 신뢰성은 화자 설명의 역사적 정확성이나 의식적 시점이 ‘진리’냐 하는 문제와는 구별하여 이해해야 한다. ‘신뢰성’은 문학적 분석의 문제이고, 역사적 정확성은 역사가의 영역이며, ‘진리’는 신자들과 신학자들의 문제이다.
텍스트 내부의 관계
화자와 예수(The narrator and Jesus). 화자와 예수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것을 언급했다. 화자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고 예수가 무엇을 알고 계신지도 알고 있다.
화자와 예수 둘 다 ‘모든 것’을 알고 잇다. 그러나 화자는 예수의 말씀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자롯 나타나고 있다.
화자가 해석자로서 담당하는 역할의 중요성은 이야기의 서술을 생략하고 대화만을 읽을 때 명백해진다. 예수의 말씀과 가까운 문맥에서 해석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라고 해도, 화자가 예수의 말씀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화자의 삶의 상황은 저자 자신의 삶의 상황과 일치하는 것임이 거의 분명하고, 고별강화에서는 예수의 예견적 말씀에 의해 예수와 후기시대의 연결이 유지되고 있다.
주석가들은 요한복음의 다른 부분에 나타난 예수의 선언들 가운데서 강화자료와 병행하는 수많은 구절들을 확인해냈지만, 화자의 말과 화자가 보고하는 강화자료 사이의 관계를 평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또한 해석적 해설은 플롯을 발전시키는 매개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해설의 효과는 독자의 관심을 예수에 대한 배반, 예수의 죽음과 영화에 집중시켜 이러한 사건들이 어떤 방법으로 생겨나게 될 것인가에 대해 극적인 흥미를 조성한다.
화자가 갖고 있는 시점의 의식적인 면과 어법적인 면은 예수의 시점과 아주 밀접하게 일치하고 있어서, 서사 전체를 통해서 예수와 다른 등장인물들을 표현하는데 미묘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화자와 내포 저자(The narrator and the implied author). 화자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관계는 저자 또는 내포 저자와 맺고 있는 관계이다.
우리는 요한복음서에서 해석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화자, 보혜사. 사랑하시는 제자, 이 셋을 더 깊이 고찰함으로써 화자, 내포 저자, 저자의 관계에 가장 잘 접근해 갈 수 있다.
요한복음을 읽을 때, 화자는 결국 내포 저자를 사랑하시는 제자로 확인해 주거나 또 더 적절한 표현으로는. 내포 저자를 사랑하시는 제자로 등장인물화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21:24에서 편집자는 내포 저자를 사랑하시는 제자로 등장인물화시키고 있다.
서사 시간
먼저 ‘서사’(narrative)와 ‘이야기’(story)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서사’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텍스트이다. 그렇다면 서사시간을 이야기 시간과 구별될 것이다. 우리가 의도하는 바, 이야기 시간이란 요한이 기록한 대로 예수의 사역기간 중 발생한 시간의 경과를 의미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요한의 이야기 안에 드러나 있는 예수의 사역기간이다. 반면에 서사 시간은 이야기 속 사건들의 순서, 지속, 빈도에 의해 결정된다.
서사시간은 다소 이야기 시간과 비슷하게 일치할 수도 있지만, 이 둘이 결코 동일하지는 않다.
순서
요한복음에서 사건의 순서는 논의의 출발점을 제공해 준다. ‘이야기의 순서와 서사의 순서 사이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불일치’를 착시법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야기에서 사건의 순서는 서사에 나타나는 단서들이나 외부 정보로부터 정확도를 다양하게 추론할 수 있다. 서사가 사건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순서와 이야기 속에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 순서는 동일하지 않다.
이전 사건들에 대한 암시는 ‘회상’이라고 보다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데, 즈네뜨는 ‘어떤 주어진 순간에, 우리가 위치하고 있는 이야기의 시절보다 더 일찍 발생한 사건의 실제 이후에 회상하는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다가올 사건들에 대해 예기하는 것은 ‘예시’라 불리는데, 다시 말해 ‘나중에 발생하게 될 사건에 대한 사전적 서술이나 소환으로 이루어진 서사적 책략을 말한다’.
요한복음의 외적 회상을 조사해 보면 구별되는 두 개의 범주에 속해 있음이 드러나는데,, 요한복음 자체가 이러한 구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러한 두 범주를 ‘역사적’ 그리고 ‘전 역사적’이라고 지칭할 것이다. ‘전 역사적’ 회상은 자신의 정체, 기원, 사명에 대한 예수의 특별한 지식을 전달해 준다. 화자는 이 지식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며, 이야기 속에서 예수는 그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려고 노력한다.
역사적 회상들은 침례요한의 사역보다 앞서 발생했던 특별한 사건들을 상기시켜 준다.
서사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사건들을 어떤 고정된 순서로 배열할 수 있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우리는 요한복음의 역사적 회상이 상기시켜 준 사건들에 대해 외적 정보를 얻어서 어떤 순서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요한복음을 되돌아보거나 다시 읽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시사적인 암시들과는 반대로, 일어나게 될 사건들에 대한 명시적 언급들에 대해 다소 관심을 갖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 이 둘을 구별하기는 어렵다. 혼잡적 예시란 서사가 끝나기 이전에 시작되어 서사가 끝난 후에도 지속되는 사건들에 대해 설명해 주는 예시이다.
혼합적 예시는 고별강화에 풍부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혼합적 예시는, 예수께서 죽으신 이후 제자들과 예수의 관계의 본질과 이 기간 동안의 성령의 역할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대부분의 혼합적 예시는 점진적으로 그 예시가 성취되기 위한 환경이 서사의 끝부분에서 조성되지만, 그 예시의 결실은 서사를 넘어 서사 이후에 맺히게 된다.
외적 예시는, 서사가 끝난 후에 일어나게 될 사건들에 대한 언급으로서 두 가지 기본형태로 구분될 수 있다. 즉 제자들과 훗날의 신자들 가운데서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언급해 주는 역사적 예시와 시간의 끝인 ‘마지막 날’에 대해 언급해 주는 종말론적 예시가 그것이다.
역사적 예시는 화자가 이야기를 말해 주는 시간까지 있었던 것들과 이야기의 미래에 잇게 될 것들로 구분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거의 이론에 가까운데 요한복음에는, 화자가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순간까지도 일어나지 않는 사건을 언급하는 역사적 예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 있는 서사 시간과 이야기 시간 사이의 착시법에 대한 개관을 통해서 우리는 요한복음에 다양한 회상과 예시가 있으며, 이들은 각각 이야기 시간을 채우는 데 있어서 독특한 서사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요한복음의 이야기 시간은 마치 서사시처럼 웅장한 양식으로 ‘태초’로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동하고 있으며, 우주적 시간의 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요약하자면, 외적 회상은 전역사적 과거와 역사적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언급한다. 혼잡적 회상은 서사의 흐름, 명료성 강조, 수반되는 해석을 제공하는 시종의 기능을 갖는다.
반면에, 내적 예시는 다가오는 사건들을 예상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더욱 흥미진진한 임무를 갖고 있다. 내적 착시법들도 역시 서사에 있는 공백들을 메우줄 수 있지만, 요한복음서에서는 내적 착시법들이 거의 이러한 기능을 갖지 못한다.
지속
서사 시간과 관련해 즈네뜨가 분석을 위해 설명하고 있는 두 번째 요소는 서사의 길이와 이야기 길이의 관계이다.
예수의 사역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관련지어 볼 때, 요한복음에는 서사의 ‘진행 속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 즈네뜨는 ‘지속’ 과 길이 사이의 관계에 따라 서사의 진행 속도를 정의한다.
요한복음의 장면, 요약, 생략의 사용에 대한 검토가 서사의 리듬과 흐름을 간결하게 제시해 주기는 어렵지만, 그것들을 뚜렷하게 부가시켜 줄 수는 있다.
빈도
즈네뜨가 다루고 있는 서사 시간의 세 번째 국면은 빈도이다. 여기에는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을 한 번 서술하기,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을 반복하여 서술하기,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을 반복해서 서술하기, 반복해서 일어났던 사건을 한 번만 서술하기가 포함된다.
요한복음에서는 한 번 발생했던 사건을 비교적 직선적으로 곧바로 진행시키고 있으며, 되풀이하여 서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즉시 명백하게 드러난다.
요한복음은 중반복적 서사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즉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플롯
플롯이란 무엇인가?
‘플롯’은 모든 사람이 이해는 하고 있지만 그 정의를 다르게 내리고 있는 용어 중 하나이다.
로버트 숄즈와 로버트 켈로그 : 사건들의 개괄, 서사의 골격형성, 서사들안의 역동적, 인과관계적 요소.
크레인 : 공식적으로 간주되는 어떤 모방적 작품의 플롯은 단순히 하나의 수단. 즉 ‘구적 틀’ 이나 ‘단순한 기교’ 가 아니라 오히려 최종적인 목표로서, 그 목표가 작품을 하나의 전체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 목표를 위해서 작품 속의 모든 요소로 하여금 직.간접적으로 작용케 하는 것이다.
프랭크 커모드: 나는 시계의 똑딱소리를 소위 플롯의 모델로 생각한다. 플롯이란, 시간에 형태를 부여함으로 사람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인간화시킨 하나의 도구이다.
포스터: 또한 플롯이란 인과관계에 강조점을 둔 서사적 사건들이다. ‘왕은 죽었다. 그 후에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이야기이다. ‘왕이 죽었다. 그 후, 슬픔으로 인해 왕비도 죽었다’라고 하는 것은 플롯이다. 시간적 순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인과관계적인 분위기에 의해 단순한 시간적 순서의 의미는 흐려진다.
키어런 에건: 플롯이란, 결정적인 정서적 반응을 유발시키기 위해 사건들을 결정하고, 사건의 순서를 배열하는 일련의 규칙들이다.
에이브럼스: 극적 작품이나 서사적 작품에서 플롯은 행위의 구조이므로 이것들은 특히 감정적, 예술적 효과를 달성하도록 배열되고 연출된다.
에이브럼스: 극적 작품이나 서사적 작품에서 플롯은 행위의 구조이므로 이것들은 특히 감정적, 예술적 효과를 달성하도록 배열되고 연출된다.
성격의 플롯(plots of character)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성숙의 플롯, 교정의 플롯, 시험의 플롯, 환멸의 플롯이다.
복음서는 플롯을 가지고 있는가?
복음서 저자들에게는 복음서의 다양한 사건들뿐 아니라 심지어 이야기의 일반적 형태까지도 그들이 받았던 전승들 안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복음서 저자들은 사건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했고, 이러한 의미가 사건 속에 처음부터 암시되어 있었다는 것을 독자에게 확신시켜야 했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야기의 내적 일관성을 수립하고 이야기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자료를 선택하고, 형태를 만들고, 배열하는데, 그렇게 형성된 이야기의 순서는 어떤 진행과 인과성을 수립하게 된다. 복음서 전체를 통해 반복되는 다양한 주제나 모티브를 설정하기 위해 행위와 대화가 사용되었고, 이양기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화자와 등장인물들이 상호 협력하도록 구성했다.
복음서는 플롯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세서는 플롯 자체가 이야기에 대한 복음서 저자의 해석이며, 복음서 저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이야기 해석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요한복음의 플롯은 무엇인가?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에서보다 서사를 의식적으로 구성한 것이 더욱 분명한데, 그렇다고 해서 요한복음의 구조가 공관복음서의 구조보다 더 빈틈없이 견고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의 플롯은 무엇인가? 시작, 종결, 반복되는 소재, 등장인물의 임무, 갈등의 성격, 이 모든 것들이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에 대한 확대된 소개로 시작하고 있으며, 플롯은 예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서언은 예수를 거룩한 로고스로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요한복음의 플롯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요한복음의 플롯 전개
2:!1까지의 요한복음 첫 부분은 예수와 그의 사역에 대해 극적인 소개를 한다.
요한복음 2장은 서사를 명료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복잡하게 만든다. 요한복음 3장에서도 여전히 예수에 대한 실제적인 반대는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신앙의 의미를 독자가 이해하도록 안내해 준다.
요한복음 4장에서도 역시 예수에 대한 반대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4장은 바리새인들의 위협에 대한 암시로 시작된다.
요한복음 5장에서는 새로운 발전이 나타난다. 예수의 정체에 대한 갈등이 아주 격렬해진다.
불신앙과 갈등은 6장에서 더욱 고조되고 있다.
요한복음 7장에서는 반대가 완강해지고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유대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며, 거듭해서 예수를 체포하려는 시도를 한다.
요한복음 8장에서는 예수와 유대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적대감과 그 거슬리는 정도에 있어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여러 가지 점에서 9장과 10장의 첫부분은 해석적인 막간극을 형성하고 있다. 고조된 적대감은 하강하는 것처럼 보이고, 예수를 체포하려는 책략이 거의 진전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한복음 11장은 삶과 죽음 사이에 얽힌 관계를 드러내준다. 요한복음 12장은 과도기적 전환점이다. 요한복음 13장은, 예수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시간이 이르렀음을 알고 있었다는 화자의 해설로 시작된다.
18장에서 기다림은 끝이 나고, 사건들은 예수의 죽음을 향하여 신속아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요한복음 21장은 분명히 요한복음이 완성된 후에 간략하게 첨가된 후기이다.
몇몇 부수적 갈등들을 해결하고 있으며, 요한복음의 상징들을 발전시켜 절정에 도달하게 한다. 그러므로 21장은 요한복음의 필연적 결말이다. 이러한 종결은 제자들의 미래 사역과 복음서의 저술을 암시해 줌으로써 이야기와 독자 사이의 간격에 다리를 놓아준다.
결론
요한복음의 풀롯은 예수에 대한 응답이 신앙인가 불신앙인가 하는 둘 사이의 갈등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요한복음의 반복법도 역시 여러 비평가들에 의해 주목받아 왔다.
본 장 처음에서 정의한 플롯의 네 가지 구성요소의 특징은 중요한 정도에 따라 차례대로 요한복음에 제시되어 있다.
일상의 상황에서 다양한 개인들과 폭넓게 대면하는 예수를 보여줌으로써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한다는 메시지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 안에 등장하는 결국 믿고 증거하게 되는 요한복음의 모든 등장인물을 포함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으며 요한복음의 플롯은 주제적 발전에 의해 조절되며, 독자가 예수에 대한 요한복음의 해석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한 전략에 의해 조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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