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연구(II)
“독자의 상황, 바울의 상황”
들어가는 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누군가가 사도바울에 대하여 한 문장으로 말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그가 진정으로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던,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하나님의 종이라고 설명하겠다. 사도바울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준 영향은 실로 위대하다. 특히 주임의 종이라고 고백하며 그 길을 준비하는 신학생들에게 그의 삶과 사역은 그를 깊이 묵상할수록 우리로 더욱 겸손하게 하고 더욱 겸비하도록 도전을 준다.
나는 교수님의 배려고 과제가 책의 일부로 축소되었지만, 책 전체를 정독하여 에세이를 작성하고자 한다. 어느 한 부분도 그냥 지나칠 수 없고, 지금 이 책을 정독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언제 또 그러한 기회를 잡겠는가? 다음에 다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각오로(나는 평소에 책을 읽을 때 이러한 각오로 읽는다.) 끝까지 정독하고 전체를 살펴 에세이를 정리하려고 한다. 더구나 제출 기한도 연장되어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하다가 시간이 부족하면 한 곳까지만 제출하고 나머지는 방학 후 개인적으로 제출하려고 한다. 교수님이 허락하신다면…
나는 이 과제가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니기 때문에 글자체, 자간, 행간, 형식 등에 자유도를 주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휴먼편지체”를 쓰기로 하고, 글자 크기를 11로 하고, 행간을 150으로 하였고 형식 또한 나름 에세이 형식으로 써 내려가려 한다. 또한 본 과제물에는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배운 내용들도 포함될 것이다. 그것은 교수님에게 배우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정독함에 있어서 또 다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인 한천설 교수님의 학문을 내 것으로 습득하는 기쁨이다. 저자의 바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물로 그 신학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론적 부분도 많은 배움을 얻게 되었다. 특히, 나는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저자 서문을 매우 중시해서 살펴보는데 교수님의 저자 서문은 참으로 탁월했다. 본 책에 대한 개요는 물론 독자들로 하여금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의 역할을 하며, 독자들이 어떠한 관점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안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에세이 또한 교수님께서 저자 서문에 제시한 주제대로 정리하고 내 의견을 밝히려 한다. 첫째, 바울서신 연구 자세에. 둘째, 바울 서신 배경 연구. 셋째, 교회를 위한 바울 신학의 관한 글들. 넷째, 바울 신학에 관한 글을 정리하고, 각각에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실었다. 끝으로 종합적으로 이 책의 주제를 정리하고 책을 평가하며 나의 바울서신을 공부하는 자세에 대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나의 생각”란에 적었다. 이제 교수님의 안내에 따라 바울서신의 깊은 심해를 탐험해 보자!
Chapter 1. 바울서신 연구 자세
1. 왜 바울서신으로 복음서를 읽으려 하는가?
설교자가 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기록된 본문을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바울서신에서 얻은 자신의 선입관이나 전제를 공식화해서 상황과 배경이 전혀 다른 복음서에 그대로 대입시키려 하거나 혹은 그것을 복음서를 해석하는 열쇠로 사용하려 할 때 문제가 발생된다.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을 바울의 것처럼 뜯어고치려 하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바울에 맞게 조화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또, 예수님과 바울 사이에 대립이 있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 중에서 어느 한 편만을 인정하고 다른 한 편은 본 의미와는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예수님과 바울, 복음서와 바울서신을 싸우도록 만들고 있다. 실재로 많은 사람들이 복음서를 있는 그대로 읽으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바울서신에서 추출한 단편이나 자신의 전제를 가지고 읽고 있다. 그 결과 예수님과 바울사이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예수님께 바울의 옷을 입혀 복음서를 채색시킴으로 복음서를 바로 해석하지 못하게 만든다.
자신의 틀을 가진다는 것은 바람직한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다. 목회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도 목회자들은 더욱 강한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람이 자신의 주관이나 전제를 가진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꼭 필요한 것이다. 목회자에게 이런 것이 없다면 어떻게 복음을 지켜내며, 수많은 거짓 가르침들로부터 교회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겠는가? 또한 이런 신학과 신앙의 틀이 있기에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마다 말씀 속에서 자신의 신앙과 신학이 얼마나 성경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고, 더 나아가 우리가 전하는 말씀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면 이외에 부정적인 면도 있다. 특히 이 틀이 성경연구와 해석에 관계될 때 더욱 그러하다. 즉 설교자가 어떤 본문을 대할 때 성경 저자가 무엇이라 말하는지 그것을 들으려 하기보다는, 이미 성경을 읽기도 전에 그 본문은 의례히 그런 의미이겠거니 하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동일시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성경은 더 이상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신학과 사상의 틀을 입증하기 위한 하나의 참고서적, 또는 증명구절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를 발견하려 하지 않고, 설교자가 미리 알고 있는 의미를 그 성경 구절에 부여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일 뿐만 아니라 성경을 파괴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의 주장을 성경에 부여하려 한다거나, 또는 성경말씀을 자기의 편의를 위해 진흙 주무르듯 마음대로 다루어서는 안 되며, 성경 스스로가 말하는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하려는 열린 자세를 지녀야 한다. 우리가 이런 잘못된 접근 자세를 가지게 되는 것은, 성경 구절이 실제로 이 세상에 살며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한 인간의 기록이라는 것과, 그가 그것을 기록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사상을 전달하려는 것이었다는 사실과, 그래서 결국 그 본문에는 오직 한 가지의 의미만이 들어 잇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데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자기가 원하는 교리나 이론을 끄집어내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결코 아니다. 누구도 성경을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교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듣겠다는 자세가 요구된다. 따라서 설교자들은 이런 성경해석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을 자신이 지키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심각히 물을 필요가 있다.
나의 생각: 지난 설교 나의 지난 설교 본문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학부 때부터 약 6년간 사역을 하였는데 근 200편 이상의 설교를 한 듯하다. 성경 각 권별로 설교를 모아 두었는데, 4복음서의 본문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바울서신이었다. 학부 때 배용덕 교수에게서 신약을 배웠는데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그렇게 정리를 해 놓았던 것이다. 복음서의 설교를 몇 편 꺼내 읽어 보았다. 아직은 내 관점이 바울서신의 관점으로 설교문을 작성했었는지 파악하기는 힘들다. 학부 때 배운 설교 작성 매뉴얼 데로 작성 한 것이지 나의 특별한 설교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부로 어떤 철학을 정립하다가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바울서신의 관점에서 복음서를 해석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신학원 공부를 다 마치고 모든 것을 고려하여 설교 철학을 정립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
바울서신은 복음서를 읽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많은 설교자들은 대부분 복음서보다는 바울서신으로부터 자신의 신학의 틀을 세운다. 그 이유는 바울이 비록 복음서의 저자들과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복음서의 저자들보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가장 깊이 해석하며 체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인격과 메시지는 바울서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울의 신학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메시지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음서와 바울서신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통일성과 연속성만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바울서신에서 얻은 것을 아무 부담 없이 복음서의 해석에 그대로 대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통일성과 더불어 또한 분명한 차이점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에는 저자의 차이가 있고, 그것을 읽는 독자들의 상황이 서로 다르고, 또한 시간의 흐름에 의한 형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음서 기자들과 바울은 그들 나름대로의 개성과 특수한 성격을 지녔고, 그리고 이 요소들은 그들의 타나냈던 사상에 불가불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대상과 상황과 문학적 양식의 차이도 둘 사이에 존재한다. 또한 복음서에 소개된 예수님의 설교는 복음의 역사 속에서 부활 이전의 단계를 나타내고 있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의 계시의 정점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되돌아보았다는 점에도 차이가 있다. 이와 더불어 이 둘이 서로 다르게 보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이 두 부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자기계시는 아직 여러 면에서 어느 정도의 은폐와 유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심지어 그의 고난과 죽음의 의미까지도 해당된다. 그러나 바울의 설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성취된 구원과 그것을 자신의 사역을 통해 친히 이루시고 높임을 받으신 고양된 예수님을 선포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서신과 복음서의 설교 사이에는 본질의 차이는 없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형식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만일 어떤 설교자가 이에 설명한 복음서와 바울서신의 특성이나 차이점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체 바울서신에서 얻은 자신의 틀이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복음서를 해석하려 한다면 그는 복음서를 바로 해석하기보다는 반대로 복음서를 틀리게 해석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 연구자는 자기가 읽는 본문을 의도적으로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익숙한 본문이라 할지라도 마치 처음 대하는 본문 인 것처럼 편견이나 전제 없이 본문을 해석해야 하고, 절대로 본문에 경솔하게 접근해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생각: 복음서는 복음서로, 바울서신은 바울서신으로. 바울서신은 복음서를 읽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상황이 다르고, 정황이 다르며,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바울서신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그 구원의 적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네 가지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고, 바울서신은 그 결과로 세워진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갈등은 무엇인가? 대적자들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어떻게 구원이 우리에게 유효한가? 등의 매우 다양하고 필요한 내용들을 광범위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는 복음서로 읽어야 하고 바울서신은 바울서신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미 익숙한 본문이라 할지라도 마치 처음 대하는 본문인 것처럼 편견이나 전제 없이 본문을 해석해야겠다. |
성경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신약 본문을 대하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본문 자체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자세이다. 성경을 바로 보기를 원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성경 본문 자체로 먼저 들어가야 한다. 사시 말하면 다른 주석이나 설교집에 의해 어떤 선입관이나 편견이 생기기 이전에, 또는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틀, 전제 등을 이용하기 전에, 가장 먼저 본문 자체를 읽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의도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성경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그의 생각과 의도를 정확히 밝혀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어떤 틀을 가지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을 읽지 말아야 한다. 이것 또한 성경을 연구하는 설교자의 기본자세가 되어야만 한다. 만일 이런 자세로 성경을 대하지 않는다면 성경연구나 해석은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자세를 가지고, “과연 본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성경을 진정으로 깊이 알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의 전제나 고정관념을 벗어날 줄 아는 용기를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 말씀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시키는 교만과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런 전제를 뛰어 넘고자 하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선행시키지 않으면, 우리의 성경연구는 아무런 새로운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굴레에 매어서 모든 가능성과 연구의 결과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지지 않는다면, 좀 심한 말이지만 굳이 어렵게 성경연구를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과거의 연구들을 그대로 답습하여 2014년 이 한국 땅에 살아가는 성도들과 교회를 위한 대답으로 내 놓으면 될 것 아닌가?
넷째, 이러한 열린 자세로 성경을 연구하게 되면 자신이 대하는 성경구절 들이 다른 구절과 서로 상충되는 어려움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때는 굳이 어떤 틀에 맞추려는 억지 해석을 시도하지 말고 각 본문이 다양한 배경 속에서 가지는 본래의 의미와 교훈을 발견하고 겸손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경을 진실로 이해하고 연구해 보려고 하는 자는 성경이 가라는 곳이며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반대로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성경을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설경이 말하도록 하는 훈련을 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설교자가 평생 동안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자세이다.
나의 생각: 혼합주의 현재 우리 한국 교회에는 말씀 이외의 방법으로 교회를 부흥 시키려고 하고, 또는 말씀과 다른 무엇을 혼합하여 각 교회와 부서를 부흥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나도 그렇지 않았는가 반성해 본다. 어떤 프로그램을 돌려 호응을 받아 아이들의 출석률을 높이고, 다른 교회의 아이들을 뺏어 오는 일을 하지 않았던가! 말씀에 집중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즐거워할 프로그램이 있을까 찾아다니던 나의 모습을 반성해 본다.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목회자란 건축가도, 행전가도, 상담가도 아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부름 받은 말씀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므로 말씀을 바로 해석하고 바로 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매어 성경을 바로 연구하지 못하므로 잘못된 메시지를 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말씀에 목숨을 거는 말씀의 전문가 되어야 할 것이다. |
2. 바울서신의 상황성
바울은 유대와 헬라의 두 세계를 살았던 사람이다. 기독교는 본래 이스라엘 안에서 유대교를 모태로 하여 태동하였다. 유대인인 예수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의 제자들도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스승이 떠난 후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위탁된 복음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유대인들에게만 전했다. 그리고 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교회도 지역적, 인종적, 사상적으로 협소한 유대 판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이 기독교는 로마제국에서 이방종교로 인정받을 정도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지중해 전역에 전파함으로써, 원시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바울은, 일관성 있는 복음의 주제를 그것이 전파되어야 하는 당시 상황에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능력에 있어서, 최대 기독교의 인물 가운데 가장 뛰어났던 사람이었다. 바울의 이런 모습 뒤에는 그가 자란 성장 배경을 간과할 수 없다. 바울은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고, 두 세계, 즉 유대와 헬라를 동시에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내적으로는 철저히 유대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또한 당시 유대인들이 거의 알지 못했던 로마와 헬라 세계를 매우 잘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두 세계간의 다리가 되고, 또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도구로서 준비시킨 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을 바르게 설교하려는 사람들은 바울이 그 나름대로의 특수한 성장배경을 지녔고, 이 요소들이 그가 기록했던 서신들에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울의 가장 탁월한 공헌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재 진술한 그의 복음, 즉 자신의 생애와 사역을 통하여 구현된 은혜의 복음을 친히 기록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모두 13개의 서신을 기록했다. 이 서신들은 기독교의 근본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으며, 이는 또한 사복음서의 해석책이기도 하다. 바울은 그의 편지들 안에서 몇 가지 교의적 논제들을 발전시키고, 그리스도인들이 좀 더 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그의 서신들은 이러한 이중 목표를 가지고 기록되었다. 이런 이중 목표를 감안해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 그의 서신들 안에 계시의 요소들, 원시적 복음 선포의 단편들, 그리스도의 가르침들, 구약 성경의 해석,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해석, 그리고 개인적인 인사와 사견들이 뒤섞여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서신들은 어떤 신학자가 상아탑 속에 앉아 사색하며 발전시킨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론들의 집약서나 논문이 아니었다. 바울서신의 또 다른 특성은 선교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나가는 과정에서 그가 부딪혔던 문제들과 교회들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 답을 주는 편지 형식의 글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가 기록한 대부분의 서신들에는 독자의 상황뿐 아니라, 동시에 저자인 바울 자신의 상황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바울서신을 바로 설교하려는 사람들은 바울의 사고와 그 표현이 지닌 다양한 변조를 염두에 두어야 하고, 그의 서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록 목적이나 성격을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바울서신을 설교할 때 당시 상황과 배경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리고 바울의 설교가 얼마나 상황화 되었는가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이런 점을 무시하고 설교하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태도인가 하는 것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바울서신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바울의 사고를 그의 사고와는 동떨어진 범주에 맞추려 하거나, 혹은 단순하게 미리 엉뚱한 신학적 체계를 세워 놓고 거기에 바울의 사고를 하나의 예증으로 갖다 붙이려 한다면, 그런 체계화는 아무 가치도 없다. 그러므로 바울서신을 설교하는 설교자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먼저 “바울이 그의 서신을 통해 그 당시의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교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메시지가 오늘의 신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하는 것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바울 당시의 ‘삶의 정황’이 어떠했는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독자와 독자의 일정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준비된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독자의 이런 필요성은 저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성경 저자는 독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성경을 기록했으며, 독자가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자료들을 사용했고, 독자가 이해하기 편리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기록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신자의 상황이 성경 저자의 메시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독자의 상황이 저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점은 바울서신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서신을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울이 그 서신을 왜 기록해야만 했는가?” 하는, 그 저작 동기와 공동체의 상황이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각 서신의 ‘서론적 문제’라고 하며, 이는 각 서신을 해석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왜냐하면 바울의 서신들은 근본적으로 각기 다른 환경에 놓여 있던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울은 어떤 교회의 특별한 상황이 그의 교훈을 필요로 할 때만 여러 주제들을 논하였다. 바울은 대부분 교회의 상황에 따라 거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서신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런 성경을 지닌 바울의 교훈을 설교하는 사람이, 이런 배경을 무시하거나 모른 체 해석을 시도한다면, 그가 어떻게 바울의 메시지를 바로 추출해낼 수 있겠는가? 하물며 한 구절, 한 문맥만을 가지고 바울을 해석하려 한다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해석을 하고 있는지, 설교자는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울이 선포한 모든 설교의 핵심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사건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설교 어느 곳에서나 구속사적인 성취를 이루신 이 예수를 주로 믿어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한다. 이런 통일적이고 초월적인 메시지가 그의 설교에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관성이다. 이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하여 그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영원한 것이다. 바울의 일관적인 설교는 그 메시지를 받는 청중들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과 역사 속에서 적절히 선포된 것이었다. 바울은 구원역사를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것이 선포되는 각각의 상황에 매우 적절하게 적용할 줄 알았다. 그러기에 그의 설교는 청중과 상관없는 종교적 연설이 아니라, 그 청중들의 영적 필요와 삶의 요구에 꼭 들어맞아 그들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바울은 그가 섬겼던 여러 교회들과 그의 선교 현장에서 자신이 직면해야 했던 여러 상황에 매우 민감했었고, 그래서 자신의 편지로 그런 상황 속에 있는 교회를 향해 복음을 설교했던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이 설교가 그러했고, 각 교회에 보낸 그의 편지들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이 사회학적, 경제학적, 그리고 심리학적 상황을 심도 있게 고려한 후에 선포되는 바울 설교의 상황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관성과 상황성은 바울 설교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바울의 설교는 하나의 교리적인 주장을 가지고 역사적 상회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발적인 직관적 사고로 복음을 파편화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특수와 보편, 다양성과 통일성을 통합하고 있다. 정리해보자면, 바울의 설교에서는 통일적이고 불변하는 복음의 일관성과 청중의 구체적인 형편과 영적 필요에 따르는 상황성이 교차되고 통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바울 설교의 일관성과 상황성 간의 상호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서신을 설교할 때 바로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복음의 보편성과 통일성을 견지하면서, 이 복음을 청중의 특별한 상황을 위한 복음으로 재해석해 내고 설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는 바울의 설교가 자주 구체적인 상황성은 무시된 체 설교자의 주관대로 선포되는 문제점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 설교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바울의 설교는 그가 선포했던 역사적인 상황성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복음은 상황에 적절히 적용되어 선포될 때에야 진정으로 ‘들려지는 메시지’가 될 수 있고, 이 결과 교회를 교회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두 가지 질문 바울서신을 공부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두 가지 질문을 배웠다. 그것은 “바울이 그의 서신을 통하여 그 당시의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교훈은 무엇인가?”와 “그 메시지가 오늘의 신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란 질문이다. 그래서 각 서신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통일된 근본 신앙과 교리는 있지만 각 교회가 처한 상황에 맞추어 가장 필요로 하는 답변을 바울은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자가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도록 단어와 예시를 선택함을 볼 수 있다. 내가 바울서신을 읽을 때 그 책의 저작 동기와 그 공동체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한 구절, 한 문맥만을 가지고 바울을 해석하고 설교를 하려고 하는 위험하고 무모한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울서신을 설교할 때 그 특수성과 보편성, 다양성과 통일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바울서신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첫째, 기록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복원하라. 성경은 2000년 전에 쓰인 과거의 책이다. 1세기에 일어난 일들을 취급하고 있고, 초대교회의 상황을 전제로 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21세기의 눈으로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고, 1세기의 저자와 청중, 혹은 독자의 관점에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바울서신을 설교하려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서신이 기록될 당시의 독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던가를 발견해내는 작업을 행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이것을 역사적인 상황을 복원하는 ‘역사적 접근’이라 부르며, 이것은 모든 성경 해석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바울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이지만, 일차적으로는 당시 그 시대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신서들은 당시 독자들이 당면했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예수님의 강론은 그 당시 사람들의 요구에 직접적으로 호응하는 것이었으며, 사복음서는 성격이 저마다 다른 특수한 목적과 상황에서 기록된 것이다. 계시록도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의 최후 승리를 말하기는 하지만, 역시 그 당시의 실제 삶의 정황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에 있어서 제일 첫 목표가 되는 것은, 그 말씀이 그 당시 듣고 읽었던 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던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역사를 다시 복원해 내는 일이 필요하다. 설교자는 다시 포대교회로 돌아가 바울이 되어 설교해보기도 하고, 또한 청중이나 독자가 되어 바울의 말을 들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초대교회의 역사적인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오늘날 신학적으로 많은 문제가 되는 것들이 좀 더 분명해지고, 또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시에 이러한 작업은 “바울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정당한가?”를 스스로 검증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며, ‘바울 연구의 객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재구성하는 문제는 설교자들에게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설교자는 자신이 역사가의 안목이 없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제로 우리의 과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평생 동안 이 일만을 해온 성경 역사가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시대 배경사’나 ‘신약사’등을 다룬 책들을 읽음으로써, 이런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필자가 도전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작업이 단지 전문가들을 위한 일이라고 미리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바울서신이나 성경의 깊은 이해를 위해 설교자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역사적인 복원 없이는, 본문이 자칫 개인의 이도에 따라 왜곡될 수 있는 위험이 있고, 그 결과 바울이 의도한 바와 다른 복음이 전해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메시지를 발견하라. 다음으로 성경해석자는 비록 바울의 글이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목적을 가지고 주어진 것이지만, 어떤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여인들에게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라.”고 한 것은, 오늘에도 “여인들이 머리에 무엇을 쓰고 예배드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 설교자는,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하지 않아서 복음이 비난을 받게 된다면, 비록 ‘기인의 단장에 관한 권리’짜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원리를 축출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추출한 메시지를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라 이제 설교자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작업은 과거의 상황에서 나온 보편적이고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시켜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작업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1:5에 나오는 ‘권리 포기의 원리’는 어떤 개인이 당면한 특수 문제에 적용될 때에만,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든 맞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족 문제와 관련될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관계에 적용될 수가 있는 것이다. 바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의 단계 중 어느 하나만 우선시 될 수 없다. 처음 두 가지 작업은 세 번째 것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모든 성경 해석의 최종적인 관심은 세 번째 단계, 즉 역사적인 상황에서 나온 보편적인 원리를 오늘 날의 성도들과 교회의 삶의 정황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여 과거 이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을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설교자들에게 주어진 책임이요, 사명이요, 특권인 것이다.
바울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시대정신에 의해 해석이 되고, 그 시대에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도 바울은 수수께끼 같은 신비적인 인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그 바울은 자신이 오늘의 설교자들에 의해서 정당하게 해석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교리적인 편견이나 지나친 상황화의 제물이 되기를 거부하면서, 바울은 오늘도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러므로 바울을 설교하려는 사람은 바울을 연구하기 전에 겸허하게 자기비판의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바울의 모습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나의 생각: 말씀에 대한 순종과 회복 현재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성도수가 줄어들며, 혼란을 격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세속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급속한 세속화로 인해 교회 내외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으며, 정체 상태를 맞아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이를 극복할 길은 없는 것일까? 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회복하는 대에 그 길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복음의 일관성과 상황성의 문제, 즉 초월성과 역사성의 균형을 회복하는 길만이 바른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서 한편으로는 복음의 진리를 더욱 깊이 연구하고, 동시에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들을 바로 분석함으로써 복음을 힘 있게 선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복음 선포를 통해 교회를 위기로부터 구할 책임과 사명이 우리 설교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진정한 복음주의 설교자는 복음의 빛 아래서 상황을 보고, 또 상황이 제기하는 문제를 복음에 던져 새로운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쉬지 않고 기울이는 설교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
Chapter 2. 바울서신의 배경 연구
1. 로마서 배경연구
로마서는 바울이 기록한 13서신 중 가장 중요한 서신가운데 하나이다. 이 서신은 기독교 신학의 형성과 발전에 신약성경의 어느 다른 책보다도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베드로전서나 히브리서에 영향을 준 것은 물론이고 속사도시대의 저술들, 교부들의 사상,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현대 신학자들의 사상에도 중대한 여향을 미쳤다. 로마서를 어떤 특정한 역사적 동기와는 무관한 하나의 신학적 논문이나 교리서, 또는 단순한 바울 사상의 개요서 정도로 보는 것은 로마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상황의 특수성을 부인하는 것이 되며, 그 결과 로마서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로마서 연구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많이 채색되고 왜곡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당시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그의 생각과 의도, 그리고 그가 했던 일을 그 당시 역사적 상황으로 돌아가서 정확히 밝혀내는 일이다. 로마서는 다른 서시들과 마찬가지로 이 서신 또한 복음을 위해 애쓰던 선교의 현장에서 기록한 선교사의 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로마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세기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서 바울이 어떤 상황에서, 그리고 왜 이 서신을 기록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런 작업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바울의 의도나 기록 목적을 바로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로마서를 바로 설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의 바울의 상황과 로마교회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복원함으로서 로마서를 바로 설교하고자 하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데 있다.
수신자의 상황
①로마의 유대인 사회
로마는 라인 강 서부와 다뉴브 강 남부의 유럽 전 지역과 유프라테스 강 서부의 서남아시아 전 지역, 즉 지중해 지역 전체를 총괄하는 로마제국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군사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그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로마에는 주전 1세기 말엽부터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시민권을 획득하고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마 이들은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 의해 전쟁포로로 로마에 끌려 왔던 유대인들로서 석방 후에도 계속 로마에 머물면서 로마 유대인 사회의 강력한 구성원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 당시 로마의 유대인 사회는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팔레스틴에서 최근에 이주를 해 와서 회당을 이룬 히브리인들의 회당도 있었고, 헬라 말을 쓰는 헬라 파 유대인들의 회당도 있었고, 또 고린도나 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이주해 와서 지역마다 나름대로 회당을 이루고 있는 등 아주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서로 다른 언어적, 문화적, 사회적, 신학적, 집단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유대 공동체가 로마에 공존했던 것은 후에 로마의 제 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가 칙령을 발포하여 유대인들을 로마로부터 추방한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게 된다.
②로마교회의 기원
로마서 1:7절과 15절에 의하면, 로마서는 로마에 거주하는 성도들에게 쓰인 편지이다. 이 편지는 로마에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는 최초의 증거자료가 된다. 그렇다면 로마 교회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로마 교회이 기원에 관해서는 바울이 직접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 이외에는 정확한 역사적 자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기에 여러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다. 얼마간의 초기 기록들이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베드로가 로마 교회의 창시자요 첫 감독이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근거나 타당성은 거의 없다.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선교정책(롬 15:20)으로 미루어 볼 때, 만일 베드로가 로마 교회를 설립했다면 결코 그 교회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능성 중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로마 교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첫 오순절에 그 절기를 지키기 위해 로마로부터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후 로마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기독교회들을 세웠을 것이라는 것이다(행 2:10 참조). 이러한 주장은 4세기의 라틴 교부 암브로시우스 견해와도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로마 교회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의존하고 있는 그는 말하기를, “로마의 교회는 어떤 특정한 사도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의식을 따라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심스럽지만 로마교회의 기원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결론짓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로마의 교회는 어떤 특정사도나 전도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기보다는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 설립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③로마교회의 상황
당시 로마 교회의 상황이 어떠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한다는 것도 역시 어려운 형편이다. 이는 로마 교회 교회의 기원이 그러하듯, 로마 교회의 상황에 대하여도 정확한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상당히 신빙성 있게 로마 교회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회당예배의 규칙은 이러하였다. 성인 남자 열 명 이상이 모이면 예배는 시작이 되었고, 화당장이 그 안식일에 읽도록 정해진 구약 성경의 본문을 읽은 후에는 “우리 중에 혹 이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위로나 권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고 청한다. 바로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은 회중 앞에 나가서 바울이 그러했듯이 “지금 여러분들이 들은 그 말씀이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약속한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당연히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도시들에서처럼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은 새롭게 등장한 기도교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도에 우선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아마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두 부류의 이방인, 즉 할례를 받고 완전히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과 하나님을 믿지만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이방인 유대교도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나게 되었고, 유대인 회당은 기존의 신도들을 많이 잃게 되어 유대인과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큰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끊임없는 분란과 폭동의 원인이 되어 결국 정치적 불안감을 느낀 클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하여 모든 유대인들이 로마로부터 쫓겨나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재구성은 로마 교회가 헬라 파 유대 그리스도인에 의하여 설립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로마 교회의 구성이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염두에 두었던 청중들도 당연히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혼합된 청중이었다. 하지만 로마 교회의 주 구성원들은 역시 이방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로마 교회는 당연히 이방적인 색채를 띨 수밖에 없었다.
④로마교회의 갈등상황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던 로마교회에 A. D. 40년에 있었던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추방 명령은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대인들이 추방되어 생긴 빈자리에 이방 그리스도인들만이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에서 쫓겨난 유대인들 중에서 분명히 유대 기독교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누가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그들 중에 포함시킨다(행 18:1-2). 바울이 로마서를 저술한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로마로 귀환했다고 할지라도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교회 내에서 대다수가 되었고, 교회의 지도력이나 신학사상에 있어서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A. D. 54년경, 글리우디우스 황제가 죽자 다시 로마로 돌아온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상황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자신들이 없는 사이 교회를 지키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차지한 우세한 위치와 이러한 상황 변화는 당연히 이 두 그룹사이의 갈등을 심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이라한 두 그룹의 갈등 양상은, 채식주의와 특정한 날 준수문제를 발단으로 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의 대립 양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로마서 14장과 15장에서 등장하는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의 대립 양상은 로마 교회에서 일어났던 구체적인 상황이다. 특히 수신자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현대 많은 학자들은 ‘강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한 바울의 권면들 속에서 로마서의 중심 기록목적을 찾고자 할 정도이다(14:1-15:3). 심지어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로마서의 가장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기록 목적이 로마 교회 내에 발생한 분열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정도이다. 아무튼, 로마 교회의 분쟁은 음식 문제나 날짜 준수 문제로 인해 불거져 나오기는 했지만, 다수를 점하는 자유분방한 이방 기독교인들과 소수 그룹에 불과한 보수적인 유대 기독교인들 사이에 갈등에 그 근본 원인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로마서 안에 나타난 유대인과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의 갈등, 또는 믿음이 약한 자와 강한 자 사이의 파쟁과 갈등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는다면, 중요한 주제를 놓치고 말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 혹은 믿음이 약한 자와 강한 자로 구성된 로마 교회는 갈등이 심화되어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할 위험에 직면했었고, 바울 앞에는 그 문제를 제거하여 다시 하나의 공교회를 만들어야 할 수신자의 실제적 상황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두 그룹사이의 화해를 시도하며, 두 그룹 모두에게 권면한다. 먼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선민의 민족적 우월성을 자랑하는 것은 복음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 논박한다(1:18-4:25). 또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특수성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갖는 자만심과 우월성도 복음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 경고한다(9-11장). 이와 같은 바울의 관심은 믿음이 약한 자나 강한 자나 “서로 용납하라.”고 권면하면서,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는 것을 볼 때 더욱 분명해 진다(14:14-15). 우리가 위에서 살핀 이러한 수신자의 상황은 바울의 상황과 더불어 로마서를 바로 보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바울의 상황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복음의 사도로서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전환점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 동방세서의 선교 사역을 완성한 후, 이제 막 서방 선교에 착수하려는 시기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동북부 지중해 지역 선교를 완전히 마쳤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복음 사역을 할 곳이 없어서, 로마를 거쳐서 스페인으로 가려고 하는 시점에 있었다(15:23). 이미 바울은 그 전에도 로마에 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약 2-3년 동안을 에베소에 머물 수박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다 해결되어서 고린도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모은 구제헌금을 가지고 이방 교회의 대표단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15:14-29). 그리고 헌금을 전달한 후에는, 그토록 기다려왔던 서방 세계에서 새로운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해 스페인 여행을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바울에게는 크게 두 가지의 염려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걱정이 되는 것은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 가면서 아시아, 마케도니아, 아가야의 이방 교회들로부터 모은 구제 헌금을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야 하는데,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의 심한 박해는 이미 각오하고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과연 예루살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과 구제 헌금을 기쁘게 받아줄 것인지? 그리고 이방 그리스도인 대표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받아줄 것인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염려는, 스페인 선교를 위하여 먼저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재정적 지원을 보장받고 그들의 이해를 얻어야만 했는데, 과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로마 교회가 새로운 후원교회가 되어 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의 선교사역의 지원교회는 안디옥 교회였는데, 이제 선교 사역지를 로마 제국과 그 서반부로 옮겨감에 있어서 안디옥 교회는 지리적으로 너무 먼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스페인을 전도하려면 로마 교회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그들의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가 자신의 새로운 후원교회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었다(15:24). 하지만 문제는, 로마 교회들은 바울에 의해 세워지지도 않았고, 또 그곳의 성도들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로마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도처에 있는 바울의 대적자들을 통해서 좋지 않은 바울의 소문을 들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따라서 그러한 오해들을 불식시키고, 또 자신의 입장을 체계적으로 변호하며 자신 편이건, 반대편이건 누가 읽어도 오해의 여지가 없는 복음을 로마 교회에 재천명할 필요가 있었다. 즉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자신의 복음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하여 유대주의 자들의 비난을 체계화 시켜 로마 교회에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로마서의 기록 동기
지금까지 살핀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상황과 저자인 바울 자신의 주변 환경들을 기초로 하여 바울이 왜 로마서를 기록했는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은 스페인 선교를 위해 서유럽 선교의 전략적 요충지인 로마 교회에 자신과 자신의 복음을 바로 소개하여 그들의 도움과 지원을 얻으려 했었는데, 이러한 선교적 목적이 가장 직접적인 로마서의 가록 동기라 할 수 있다.
둘째, 로마 교회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유대 그리스도인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어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였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권면하고 믿음을 굳건히 하려고 하는 목회적인 목적에서 기록했다(1:8-15,; 15:15). 즉 바울은 비록 자기가 설립한 교회는 아니지만 자기의 사도적인 사명을 따라서 로마 교인들에게 특별히 그들에게 필요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하여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넷째, 바울이 본 서신을 일차적으로는 로마 교회에 보내기 위해서 쓰고 있지만, 보다 폭넓은 역사적 상황에서 보면 이제 곧 방문하게 될 예루살렘 교회에서 신학적인 논쟁을 염두에 두고 로마서를 저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예루살렘 사도회의를 대비한 사전의 준비로 다시 한 번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확인하고, 유대교회와 이방교회가 하나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재천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로마서에서 체계화시켜 요약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는 수신자의 상황과 저자의 상황이 함께 이루어져 기록된 서신이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무시하고 이러한 요인들 중에서 어떤 한 요인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하여 로마서를 저술하게 된 동기로 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 모든 요인들이 나름대로 바울이 로마서를 쓰도록 작용한 동기로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 가지 더욱 분명한 것은 기록 동기가 어느 것이든,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양자를 동시에 설득시킬 수박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의 수혜자라는 사실의 신학적 그거를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 분리되어 있는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논지는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바로 알고 로마서를 해석할 때, 우리의 편견을 벗어나 로마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바로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그동안 선교 사역 중에 깨닫게 된 공통된 주제들을 신학적으로 더욱 숙고하여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교리들로 요약하고 다듬은 서신이라는 견해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생각이다. 다시 말하자면, 로마서는 단순한 기독교 교리의 요약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비록 여러 이유 때문에 주요 내용이 신학적이며, 다른 바울의 서신에 비해 상황이 적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로마서는 여전히 그 서신이 기록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실제적인 상황이 존재했던 상황서신이다. 만일 누군가가 이러한 사실을 무시한 채 로마서를 해석하려 한다면, 그는 자신의 전제와 편견 속에서 진정으로 로마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역사적 상황에 기초하여 성경이 ‘그 때, 그리고 거기에서(then and there)’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를 바로 해석하고, 그리고 그 객관적 근거 위에서 ‘지금, 여기에서(here and now)’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발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여야 할 것이다.
나의 생각: 로마서의 위력 지금부터 거의 2천 년 전인 A. D. 57년 그리스의 번창한 상업도시인 고린도의 한 집에서, 바울이라는 한 그리스도이 사도가 자신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써 보낸 편지가 이렇게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는가를 바울 자신도 정작 그 위력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 편지만큼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하게 만들고, 이 복음에 감화를 받아 변화된 사람을 살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으며, 이 로마서로 인해 종교개혁을 단행할 용기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히포의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존 웨슬리 등이 깊은 영향을 받고 자신들의 전 생애를 바치도록 했던 성경이 바로 로마서인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정리하면서 로마서를 다시 한 번 정독하였다. 비록 장문의 편지이지만 로마교회의 상황과 바울의 상황 그리고 편지의 목적 등을 되새기며 읽어 보니 로마서의 간절함이 깊이 전해졌다. 로마서를 그저 교리서로 읽었던 나를 반성하며 상황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2000년 전의 독자가 되어 책을 읽었다. |
2. 고린도전서 배경연구
고린도전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처럼 교리서신도 아니며, 디모데 전후서나 디도서처럼 목회의 자세나 지침을 가르치는 서신도 아니다. 이 서신의 특징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점과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실용적인 서신이라는데 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존재하고 있는 문제인 “그리스도인들이 기존의 사회 구조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 속에서 어떻게 거룩함을 지키며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건인가?”를 교훈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분쟁과 분파 문제, 교인들 간의 법적 소송, 결혼 문제, 영적 은사의 남용, 성만찬, 우상 제물에 관한 문제, 부활에 대한 불신 문제 등 여러 문제에 대해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고린도전서는 원칙적으로 1세기 신약 시대의 고린도 교회를 위해 쓰여졌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당시의 고린도 교회처럼 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 교회와 설교자들에게 매우 적절하고 필요한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실지로 고린도 교회는 현재 우리 교회들의 거울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를 막론하고 대개 교회의 문제들은 고린도전후서에 기록되어진 대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서신은 오늘 우리 교회들이 바울의 어떤 다른 서신보다도 주의 깊게 일거야 할 서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일 바울이 수많은 문제에 봉착했던 고린도 교회에 어떤 충고를 주는가를 우리가 자세히 살피고, 이를 교훈삼아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 상황에 적용을 할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고린도의 역사적 상황
고대 역사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주전 8세기부터 도시국가를 형성했던 고린도는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를 연결하는 지협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쪽으로는 2km 지점에 레헤움 항구가 있었고, 동쪽으로는 7km지점에 겐그레아 항구(롬 16:1)가 있었다. 이러한 지형은 마치 희랍의 목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만큼 중요한 위치였으며, 남북으로는 육로를 연결하고 동서로는 해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고린도는 자연히 군사적으로나 상업적으로 크게 번창한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고린도는 주전 146년 로마의 장군 뭄미우스에 의해 점령되어 고리도 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 갔다. 그 후 약 1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B. C. 44년에 로마 황제 시이저의 칙령에 의해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되었다. B. C. 27년부터는 로마의 총독이 부임함으로서 고린도는 마케도니아 남쪽의 헬라 전 지역을 포함하는 아가야지역의 행정 수도가 되었다. 이렇게 재건된 1세기 신약 시대의 고린도는 고대 고린도가 과거에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금 국제적인 상업 도시로 번성하게 되었다. 주민들은 헬라인뿐 아니라 로마 제국의 각 지역으로부터 이주해 온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이 되었으며, 그 중에는 약 3만 명의 유대인들도 섞여 있었다.
이처럼 당시 고린도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여러 종족들이 모이는 항구도시였기에 이들이 가져온 혼합주의가 성행했었고, 오늘날 항구 도시들이 그러하듯이 온갖 범죄와 타락한 모습이 만연한 도시였다. 또한 마치 인종 전시장과 같은 이 도시에는 그 주민들의 국적만큼이나 다양한 신전들로 마치 신상들의 박물관 같은 종교 혼합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고린도에 세워져 있던 12개 이상의 신전 중,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신전에서는 성창이 번성했었다. 이 신전에는 ‘성스러운 노예들’로 매춘부 역할을 하는 여사제가 천명 이상이나 거하고 있었고, 이들과 더불어 성적인 타락이 극심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자연히 고린도 인들을 방탕한 자로 만들었고, 성적으로 부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린도인들과 같이 산다.”는 표현은 고대사에서 “성적으로 아주 문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언이 되다시피 했다. 반면 이러한 성적, 도덕적 타락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는 부유한 도시로서 철학과 수사학이 발달하여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학교들이 번성을 하였다. 고린도의 시민들은 지적인 자부심이 있었고, 특히 수사학에 큰 가치를 두어서 지혜롭게 말하고 아름답게 말하는 것을 매우 가치 있게 생각하였다. “고린도인들과 같이 산다.”라는 격언과 마찬가지로, ‘고린도인들의 말’이라는 표현은 매우 설득력 있고 달콤하게 수사학적으로 말을 한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신약 시대의 당시 고린도는 로마인들과 헬라인들, 그리고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섞이면서 종교적 혼합주의가 성행하고, 종교적 의식이 아주 타락하는 형태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도시에 바울의 선교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1:1)가 세워지게 된다.
고린도 교회의 설립 배경
고린도에 최초로 기독교 복음이 전파된 것은 A. D. 49년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유대인들을 로마 시에서 추방하는-에 의해 로마로부터 고린도에 와서 정착한 유대인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이 이미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은 그들이 바울에게 세계를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이들은 비록 그리스도인이었지만 독자적으로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었는데, 이는 고린도에서 바울을 통해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고전 1:16; 16:15). 고린도 교회의 설립 과정은 사도행전 18장 1-18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 중인 A. D. 50-51년의 겨울에 고린도에 도착하여 1년 반 정도를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바울은 천막 사업을 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집에서 취직하여 자기 손으로 밥벌이를 해 가면서 유대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고, 그 후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로부터 내려와 합세를 하자 더욱 힘 있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바울은 방탕과 음란이 만연되어 있는 이 고린도에서 아덴처럼 철학적 변론이나 인간의 지혜를 사용하지 않고(행 17:16-34(,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평이한 말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전하였다(고전 2:1-2). 바울은 고린도에서 오직 하나의 터만을 닦았는데, 그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였다(3:10, 11). 이러한 전파를 통해 바울은 상당수의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공은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하나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유스도의 집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고린도 교회는 시작되었고, 이곳에서는 예외적으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선교 사역을 하다 52년 봄쯤 아굴라 부부와 함께 에베소를 거쳐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떠나는데, 이때부터 아볼로가 후임 사역자로 고린도 신자들을 굳게 세웠다(행 18:27-28).
고린도 교회의 구성
고린도 교회는 대부분은 아마 하층 노예 출신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던 듯하다(1:26-29). 그러나 더러 유대 그리스도인들도 있었고, 또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자만 고린도 교회는 여러 계층 간의 위화감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종은 예는 우리가 고전 10:27이나 11:17-34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성만찬을 행할 때에 공동체의 한 부류인 부자들은 많은 음식을 가져와서 잔뜩 먹고 깊이 술에 취해 있던 반면, 다른 부류인 노예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한 채 술에 취한 상태에 있는 부자들을 바라보는 상태가 되는 것과 같이 예배가 혼란케 되고 위화감이 조성되었다. 계층 간의 위화감! 이것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나뉜 고린도 교회는 교회 지도자들의 이름을 내세워 파당을 짓기도 했으며(1:11, 12), 무슨 일이 교회 안에 발생할 때마다 서로의 이익을 따라 편 가르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고린도 교회가 교회의 모임에 사회자가 필요 없을 만큼 서로 밀접하게 결합된 면도 보이고, 심지어는 기부금을 수집하는 회계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등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던 고린도 교회의 구성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출발부터 안고 있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상황과 성격
바울 당시의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아는 것은 고린도 전서를 올바로 해석하는데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흔히 고린도 전서를 해석하는 설교자들은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났던 여러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이 문제들이 마치 서로 전혀 관계없는 독립적인 것으로 이해하여 올바르지 못하게 설교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제 살펴보면 알겠지만,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났던 여러 종류의 다양한 문제들은 각각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자. 고린도 교회는 바울과 아볼로 등의 유능한 지도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이교도 사회 환경과 시대정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휩쓸려 침몰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고린도의 이방적 환경과 고린도 그리스도인의 이방인적 과거는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 성도덕의 문란, 우상 숭배, 불신자들과 교류 문제, 지혜와 지식 자랑, 윤리 문제, 그리고 성령 열광주의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특히 그들은 기독교의 구원의 복음과 세속적인 헬라의 지혜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결과, 교리와 윤리적인 모든 면에서 급속히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되고 말았다.
①문제 발생의 원인: 하나님의 지혜를 세상 지혜로 대체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의 수많은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문제들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이 모든 문제들의 뿌리는 바울이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지적한데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저버리고 세상 지혜를 받아들인 데서 기인하지 않았는가 보인다. 특히 이들이 바울의 가르침 중 세상 지혜와 혼동하여 결정적으로 오해한 것은 구원론과 성령(의 은사)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복음을 믿었을 때 받았던 구원과 성령의 은사에 대한 오해가 왜 발생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헬라 영지주의의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종말론적인 이원론을 자신들의 세속적인 영육 이원론으로 재해석하여 오해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②세상 지혜로 말미암은 대표적 현상들: 성령 열광주의와 금욕주의
이제 이러한 영지주의 이원론적 영향은 고린도 교회에서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대조적인 행동 결과를 낳게 된다. 한편으로는 성령 열광주의자들의 자유 방종조의이고, 다른 하나는 극단적인 금용주의였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자신들의 영혼이 구원을 얻었다.”고 믿었으므로, 그들의 몸으로 아무 짓이나 해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서, 일부 교인들은 고린도의 문란한 성도덕에 같이 휩쓸렸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방인들이 하지 않는 짓까지 하면서도, 그런 행동들이 죄악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영혼의 구원을 더 과시한다고 합리화했다. 이런 현상들을 학자들은 ‘열광주의(Enthusiasm)’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은사들을 구원받은 증거라고 생각하고, 그 은사들을 과시하며 부도덕에 이끄는 영적 상태를 열광주의라 하고, 이런 자들을 열광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러한 열광주의자들에 의해 발생된 고린도 교회 문제의 결정적인 예가 바로 우상 제물에 관한 것이었다. 고린도 교인들 중 바울이 ‘믿음이 강한 자’라고 표현한 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령론을 통하여 얻은 지식으로 우상이나 그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즉 고린도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은 실체가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또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을 전혀 거리끼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꺼리는 일단의 사람들 즉 ‘믿음이 약한 자’에게 상처를 주어 문제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고린도 교회 뿐 아니라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일어나게 된다. 교회가 너무나 지적인 정통 교리에만 집중하게 되면 항상 성령파들이나 은사파들의 카리스마 운동이 열광주의로 흘러서 도덕성이 약하게 일어나게 된다. 이 점은 우리 교회들도 마찬가지이다. 성령의 은사가 자신들의 구원이 확인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것만을 중시하지 삶이 따르지 못하여 도덕적으로는 상당히 문란한 상태에 빠져들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하여튼 고린도인들이 그러한 것의 전형적인 예이다.
반면에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는 영과 육의 이원론에 근거해서, “영혼의 구원만이 중요한 것이지 육체는 전혀 무익한 것이므로 영이 구원을 가능한 한 순수하고 거룩한 상태로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 육체의 정욕을 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극단적인 금욕주의로 흘렀다. 이들은 그래서 결혼을 부인하고, 시장에 파는 고기를 사 먹는 것을 피했고, 율법을 여자적으로 지키려고 힘썼다.
만일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 열광주의자들과 금욕주의자들 간의 갈등이 일어나게 된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지혜와 지식과 자유를 자랑하는 열광주의자들은 금욕주의자들을 ‘약한 자들’이라고 무시했고, 금욕주의자들은 열광주의자들을 ‘육신적 방탕자들’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그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의 대립이 고린도 교회의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③세부적 문제
고린도 교회의 분파 문제도 이러한 이원론적 영향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가 고린도 교회의 구성에서부터 살펴본 대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인 이 공동체는 추구하는 성향에 따라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 문제는 특히 아볼로와 베드로가 고린도를 방문하면서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 먼저 아볼로 파가 생겨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다. 철학과 수사학을 숭상하는 고린도의 전통에 찌들었던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성경해석의 능력과 수사적 기술을 가진 아볼로에 대해서 굉장한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사도행전 18장에서 보면 알레고리적 해석의 본고장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아볼로에 대한 평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은사를 높이 평가하던 고린도 교회의 열광주의자들은 아볼로를 자신의 선생으로 높이게 되었다. 반면에 금욕주의적인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도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율법적인 계율을 가르치는 베드로를 더 선호하게 되고, 베드로를 자신들의 사도로 삼게 되었다. 그러자 이 두 그룹에 대항해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원래 사도인 바울에게 충실하자고 하면서 우리는 ‘바울파’라고 주장을 하게 되어 세 개의 파가 되었다. 이들 세파는 아볼로가 주는 지혜가 더욱 나은가, 아니면 베드로가 더 지혜로운가 등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다양한 헬라 학파들의 지혜 정도로 생각하며 서로를 무시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또 한 부류는 아마 극단적인 열광주의적인 자들로서 자신들은 인간들이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직접 교류를 한다고 하는 이른바 그리스도파가 생기게 되었던 것 같다. 학자들 간에는 “진짜 그리스도파가 있었겠는가?”에 관한 논란이 있지만,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실제로 “그리스도파가 있었다.”고 보고, 아마도 그들은 극단적인 열광주의자들로 부활한 그리스도와 직접 교류한다고 주장하며 다른 파를 무시한 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분파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 다양한 문제, 다양한 해결책 신약에서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유용하면서도 귀중한 서신이라고 생각된다. 복음을 신학적으로 가장 잘 서술한 서신이 로마서라면, 지역교회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제시한 서신은 고린도전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서신은 사람이나 제도, 관행이나 생각 등을 비판하고 그것들을 성경적 사고에 기초하여 바로 세우는 바울의 신학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 서신에 반영되어 있는 상황적 문제에 대하여 바울의 신학적인 확신을 적용하는 방식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에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문제들과 유사한 문제들이 있어서, 바울의 채용한 방식을 거의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는 오늘날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는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귀중한 목회 실제적인 서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고린도 전서의 기록 동기 및 목적
고린도전서는 한마디로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당면한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바울의 조언을 구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기록 배경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바울은 여러 사람들, 특히 글로에의 집사람들로부터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의 소식을 들어 이미 그 대강을 알고 있었다(고전 1:11). 바울은 자신이 이전에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 안의 부도덕한 자들이나 악한 자들,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했던 편지-‘전에 쓴 편지’, ‘이전 편지’라고도 부르는데, 고전 5:9-11을 보면 이 편지는 완전히 상실된 듯하다-를 오해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고 그리스도파 등으로 분열하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다. 또한 이 무렵의 바울은 몇 가지 교회의 문제들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가지고 온 고린도 교회의 대표단을 맞았다. 이 대표단은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등 세 사람으로 구성되었는데(고전 16:17), 그 질문들은 첫째 결혼에 대해서(고전 7:1-40), 다음은 우상 제사의 고기에 대하여(고전 8:1-9), 예배 때의 혼란 문제(고전 11:2-34), 성령의 은사(고전 12:6-14:4)에 대하여, 부활에 관하여(고전 15:5-58),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헌금에 관한 것들이었다.
바울은 일단의 사람들을 통해, 혹은 편지를 통해 접하게 된 문제들에 대하여 고린도 전서에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에베소에서 기록한 이 편지에서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구원의 증표로 생각하며 “자신들은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하다.”라고 하며 교만에 빠져 있던 성령주의자들에게 예리한 역설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한다(고전 4:8). “너희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도달해서 왕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정말 사실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랬으면 우리도 너희와 같이 왕 노릇하는데 동참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이어서 바울은 이들이 아직 지상에서 육신과 죄에 노출되어 있는 신분을 상기시키며, 교회의 교제를 북돋아 주는 삶의 정신과 절제 있는 생활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성령 열광주의를 바로 잡으려고 했다. 즉 참된 영성은 도덕성을 반드시 동반해야 함을 상기시키면서, 이들의 지혜나 분파 문제들을 다루어서 이웃들에게 올바른 삶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자유의 성격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이 자유의 성격을 다루면서 교회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문제, 이른바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대립의 문제를 다룬다. 복음의 본질을 알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되 그 자유가 방종주의로 흐를 위험을 늘 갖고 있는 강한 자들과, 복음이 근본적으로 자유를 의미하는지 모르고 금욕적인 율법주의의 집단으로 흐를 위험을 늘 갖고 있는 약한 자들! 이런 문제는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이나 항상 있는데, 본질 추구자와 형식에 얽매인 자들 사이의 차이라고나 할까?
바울의 교훈
①교리적인 문제에 대한 바울의 교훈
바울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해위를 죄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세상의 지혜의 일종으로 오해하고, 이 세상 지혜에 기초하여 십자가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어리석고 미련한 것’으로 거부하였다. 세상 지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거부하는 사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1:18; 2:8; 3:8-20), 겉보기에는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2:4). 그러나 살상 그 속에는 하나님 대신에 인간의 지혜와 판단을 앞세우는 불신앙이 숨어 있는 것이다.
혹시 십자가의 복음은 인간의 지식과 논리에는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련하게 보이는 그 방식으로 타락한 인류들을 죄악에서 구원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그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1:18, 24).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지혜스러움과 논리적 설득력에 있지 않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눈에 거리낌과 어리석음으로 보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따라서 바울 자신도 바로 이러한 겸손과 자기 비하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지 않기 위해 말의 화려함이나 논리적 설득력에 의지하지 않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에만 의존하겠다고 선언한다(1:17, 2:3-4). 이는 하나님의 능력은 오직 십자가만을 바로 전할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지로 바울 사도는 자신은 평생 동안 이 십자가만을 전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련한 것으로 생각하는 십자가가 바울에 의하면 기독교의 본질이요, 전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과는 달리 세상 지혜를 끌어들여 스스로 만족하고 지혜로운 척 했지만, 그러한 행동의 결과는 그들 사이에 시기와 분쟁, 그리고 부도덕한 삶이 팽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고린도 교회는 세상의 지혜를 끌어들인 결과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세속화의 길로 나간 것이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었다. 고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복음의 변질에서 비롯된 것이지, 비 윤리나 부도덕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를 바로 알지 못하고, 윤리 문제를 그 자체로 해석하고 설교하려 한다면 그는 고린도 전서를 바로 설교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가 오늘날 현대 교회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교호들이 당시 고린도 교회처럼 십자가 복음의 부재 현상을 겪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신학’ 대신 인간 중심의 ‘영광의 신학’을 오늘날 우리 교회가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교회 내에서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과 겸손으로 살기 보다는 명예나 물질이나 권력에 대한 추구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 분만이 높임을 받는 대신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의 가치관이 여과 없이 교회 안에 들어와 교회가 십자가 대신에 다른 세상 적인 어떤 것을 대신 주려고 하지는 않는가? 주님을 붙드는 대신 교회가 그 주님께서 주신 선물인 은사와 축복에 너무 집착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고린도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을 세상의 지혜와 섞었을 때 모든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야말로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정체성의 참된 표준인 것을 알아 이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그런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②윤리 문제에 대한 바울의 교훈
우리가 고린도전서뿐이 아니라 바울의 서신을 깊이 살펴보면,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 관한 두 가지의 명확한 바울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원 문제에 관해서는 칼로 끊듯이 명확하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음을 볼 수 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그러나 윤리 문제에 있어서는 ‘절대’를 말하지 않는다. 바울 윤리의 큰 특징은 “비형식적”이고 “비계율적”이라는 데 있다.
먼저 비형식적이란 어떠한 형식이나, 혹은 종교의식 그 차체에 매이기보다는 그것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깊은 내용과 본질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또한 비계율적이란 “꼭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계율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즉 믿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즉 바울은 가변적이고,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애매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것만이 절대로 옳다, 틀리다.”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여유 있게 대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상 제물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바울은 “우상 제물은 먹어도 좋고, 먹지 않아도 좋다.”라고 한다. 도대체 이런 대답이 어디 있는가? 분명한 대답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애매모호하고 무책임한 대답을 줄 수 있을까? 왜냐하면 이런 문제는 바울이 보기에는 절대를 함부로 주장할 수 없는 가변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런 바울의 태도를 잘못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믿음만 허락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도 된다.”는 오해가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제시해 주고 있다. 즉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점이 윤리 문제에 관한 바울 교훈의 핵심인 것이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는 문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만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덕을 세우는 이타적인 자세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신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가하나, 모든 것이 다 덕스러운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든 것을 덕스럽게 하라.” 이것이 윤리 문제에 관한 바울의 결론적인 권면이다. 성도들의 윤리 문제에 관한 바울의 이 원칙은 우리 교회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아니 세계 어느 교회보다도 우리 한국 교회에 가장 절실한 가르침이 아닐까? 얼마나 많은 설교자와 그들의 영향을 받은 성도들이 구원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윤리 문제를 가지고 서로를 정죄하고, 판단하며, 상처를 입히고 있는가? 이 지면에서 그 구체적인 문제들을 일일이 다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위에서 언급한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윤리 원칙만은 강조하고 싶다. 조금은 자기 모순적인 성경을 지닌 바울의 가르침을 자신의 견해를 절대화시키려고 하는 오늘 우리 설교자들이 마음을 열고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덜 중요한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정말 강조해야 할 복음의 핵심을 놓치는 실수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의 생각: 십자가 그렇다면 고린도전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먼저 당시 고린도 교회가 처했던 상황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바로 설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고린도 전서에서 기록된 바울의 입을 빌어 그대로 오늘의 강단에서 설교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이 서신 중 한 부분이나 한 구절을 전체적 맥락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떼어 내어 설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 1세기에 처했던 고린도 교회의 상황과 그 문제들의 원인이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닌 하나의 큰 맥락 속에서 해석해 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문제들은 반드시 당시 상황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하고 그 해석의 끝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고 이를 바로 현실의 삶에 적용하고 전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그들의 요구에 타협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을 전했던 것처럼, 나도 십자가만을 전해야 할 것이다. 십자가는 과거 고린도 교회에서도 그러했고, 지난 이 천년 기독교 역사 동안 그러했듯이 오늘도 이 한국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
3. 빌립보서 배경연구
바울이 기록한 열 세 서신중에서 옥중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서신이 다섯 개가 있는데, 에베소서(3:1; 4:1; 6:20), 빌립보서(1:7, 13, 14, 17), 골로새서(4:18), 빌레몬서(1:9), 그리고 디모데후서(1:8; 2:9)가 그것이다. 이중에서 디모데후서는 디모데전서, 디도서와 함께 ‘목회서신’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고, 보통 나머지 네 서신만이 흔히 ‘옥중서신(The Prison Epistle, 혹은 The Captivity Epistle)이라 불리고 있다. 옥중서신은 바울 사도 후기 생애와 사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에베소서는 우주적 교회론, 골로새서는 심오한 그리스도론을, 빌레몬서는 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간절한 사도의 모습, 그리고 빌립보서는 이들 세 서신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기록된 서신으로 그리스도를 향한 일편단심과 교회를 향한 일치의 권면을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빌립보에 사는 성도들과 감독과 집사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이 서신이 기록된 주된 이유는, 바울이 옥에 갇혀 있을 때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빌립보 교회의 사랑과 호의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목적 외에도 빌립보서는 대부분의 다른 바울 서신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형편과 상황에 처한 교회와 성도들을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보호하고, 위로하며, 권면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려는 목회적 목적에서 기록된 서신이었다.
그렇다면 빌립보서는 어떤 상황에서 기록이 되었는가? 빌립보 교회는 어떻게 설립되었으며, 교회가 처한 상황은 어떠했는가? 또한 그 고회가 속해 있는 빌립보라는 도시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으며, 어떤 문화와 종교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는가? 특히 빌립보서에는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정치적, 군사적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1:27; 3:12-15; 3:20; 4:3 등)? 빌립보서를 바로 해석하고 바로 설교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이와 더불어 교회의 상황을 바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울서신은 2000년 전에 기록된 과거의 책이기 때문이고, 그것은 1세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취급하고 있고, 초대교회의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서신을 바로 해석하기 원하는 설교자는 21세기의 눈으로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해서는 안 되고, 무엇보다도 기록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1세기의 저자와 독자의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배경적 연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데, 이러한 연구 없이는 어느 누구도 바울의 저작 의도를 바로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빌립보서를 바로 설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빌립보의 역사적 배경
①빌립보의 지리적 위치
빌립보라는 도시는 누가에 의하면 마케도니아의 첫 성이요, 로마의 식민지였음을 알 수 있다(행 16:12). 흔히 첫 성, 첫 도시란 의미는 가장 튼 성, 즉 수도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마케도니아의 수도는 빌립보가 아니라 데살로니가였다. 그렇다면 왜 누가는 빌립보를 마케도니아 지방의 첫 성이라고 했을까? 당시 그 일대는 모두가 다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왜 특별히 빌립보를 가리켜 로마 식민지라고 지칭했을까?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빌립보의 역사와 또 빌립보가 지니고 있었던 특별한 중요성 때문이었다. 빌립보는 B. C. 358년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2세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빌립보라는 이름도 빌립 왕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어진 것이다. 이 도시가 세워진 곳은 그리스 동북쪽에 위치한 크리니데스의 옛 드라시안이었으며, 에게해로부터 약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상으로의 왕래와 교역이 활발했을 뿐 아니라, 육로의 교통 또한 매우 원활하였다. 이 도시는 많은 수원지들이 있었기 때문에(간기데스 강이 흐름) 토지가 비옥하고, 부근에는 유명한 판게우스(Mt. Pangeus) 금광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도시였다. B. C. 168년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로마의 땅이 되었다가,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후에 로마와 동방 콘스탄티노플을 이어주는 직선 도로인 에그나티아 도로가 생기면서 빌립보는 정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가 되었다.
②빌립보의 역사적 배경
첫 번째 사건은, B. C. 42년 줄리어스 시저를 살해한 부르터스와 카시우스이 공화국 군대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게 되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자기 휘하의 장교들과 군사들을 빌립보에 정착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B. C. 31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간에 유명한 악티움 해전이 벌어지게 되는데, 여기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여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가 되어 자신을 ‘아구스도’로 부르고 빌립보를 그의 중요한 군사기지로 삼았었다. 그는 빌립보에 많은 로마 군인들, 이탈리아로부터 쫓겨난 안토니우스의 부하들을 이곳에 거주시켰다. 그래서 이 빌립보를 로마의 특별 시민지(Colonia)로 만들고, 그곳 시민들을 로마의 시민들로 대우하여 ‘이탈리아의 벗(Ius Italicium)’이라 불렀고, 이탈리아 반도 내의 로마인들에게 부여했던 동일한 특권을 그들에게도 부여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빌립보 시민들은 비록 로마 식민지이 시민들이었지만, 로마 시내의 시민들과 똑 같은 특권을 누리는 아주 특별한 시민들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빌립보의 주민들은 개인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재판권을 가질 수 있었으며, 당시 악명이 높던 인두세와 토지세를 감면받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빌립보는 제 2의 로마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의 시민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했다. 그들은 빌립보를 자랑했고, 로마의 관습과 정신을 따르고 로마법을 준수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행 16:21). 실지로 사도행전 16:12-40절까지 보면 이런 빌립보인의 모습이 잘 반영돼 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기소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로마법과 로마의 풍습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주장하자 그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로마 시민의 의식과 로마 시민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히 강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바울이 빌립보서의 짧은 편지에서 정치적, 군사적, 시민적인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이라든지(3: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정치하라. 1:27)”, 또는 “너희가 일심으로 굳게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 두려워 말라(1:27-280.”는 은유(metaphor)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이러한 용어들을 쓰는 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생생하게 이해되는 언어를 쓰기 위함인데, 그 것은 빌립보 도시의 정치적, 군사적인 역사와 로마 식민지로서의 특권을 지니게 된 배경 없이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처럼 빌립보서는 도시의 특권이나 성격과 많은 관계가 있으므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바로 알아야만 본문의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린도의 종교적 배경
종교적으로 볼 때 당시 빌립보 사람들은 다른 헬라도시와 마찬가지로 매우 혼합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즉 다신숭배가 성행하고 있었는데, 특히 토착 종교인 트라키아의 트라시안을 숭배하고 있었고(Thracian deities), 이집트, 시리아, 그 밖의 여러 지방에서 전래된 신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제의적이고 고전적인 신들과 라틴의 여러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문화적으로는 헬라문화와 동양의 문화를 혼합시켜 이루었던 문화인 헬레니즘의 계승자였는데, 이방 헬라세계의 대표적인 종교적 분위기는 우상숭배와 성도덕의 타락으로 특징 지워질 수 있다. 고린도전서 8장 5절에 보면, 헬라인들은 많은 신들과 많은 주들을 섬긴다고 말하고 있다. 신약시대의 헬라세계는 고전적 헬라 철학, 즉 플라톤주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헬라 철학의 가르침이 무너지고 그것들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이해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하는 삶의 방식과 윤리적 문제로 그 관심이 옮겨지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등장한 헬라의 철학학파를 들자면, 아주 물질주의적인 에피큐러스학파의 에피큐리어니즘, 또한 자연에 순응하며 살 것을 가르친 스토아학파의 스토이즘, 또는 회의주의, 냉소주의 등이 성행하였고, 또한 각 학파마다 자기 학파의 철학자들을 배출해 내어 이런 철학들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돌아다니면서 각자의 철학사상을 전파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 당시의 분위기는 물질주의적인 사고, 회의주의적인 사고가 많이 퍼져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숙명주의적 사고였다. 즉 인간은 숙명의 힘 앞에 그저 순응할 따름이지 자신의 숙명을 결코 거스를 수 없다는 숙명주의적 사고가 사람들 사이에 지배적으로 퍼져 있었고, 그래서 절망적인 분위기가 매우 팽배했던 것이 다시의 영적 분위기였다. 당시 사람들은, ‘숙명(필연)’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자세가 사람들을 더욱 절망가운데로 몰아넣었으며,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신들과 주들에게서 도움을 얻으려고 그들을 섬기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신과 많은 주들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성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숙명론에 빠지게 되어 도덕적으로 무책임하게 살게 되면서 심하게 타락하게 되는데, 성적인 타락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히 발달하게 된 것은 점성술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별들이나 그 별들에 존재하는 신들이나 영들이 인간의 숙명이나 운명을 좌우한다고 보고, 그 별들에 존재하는 신들이나 영들이 인간의 숙명이나 운명을 좌우한다고 보고, 그 별들에 존재한다고 본 신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했었다. 또한 점성술을 통해서 자기의 운명을 미리 알아보려 했으며, 그 운명이 나쁘면 그 운명을 좌우하는 신을 달래기 위하여 마술을 사용했고, 이것이 점차 발달하여 종교화되어 가는데 바로 이것이 신비종교를 낳게 되고, 그 신들을 주로 부르게 되었다. 한마디로 당시 빌립보를 비롯한 헬레니즘의 영적, 종교적, 도덕적 분위기는 회의주의와 숙명주의와 우상숭배가 성행하는 절망의 상태, 그리고 극심한 성적, 도덕적 타락이 지배하는 암흑의 상태로서 구원자를 간절히 바라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자, 이 복음이 바로 이와 같은 헬라문화와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행 16:16-19). 즉 이런 숙명주의와 불안 속에 빠진 자들에게 참된 해방과 새로운 숙명, 즉 소망을 준다고 선포하며, 그래서 귀신을 내쫓고 점쟁이를 온전케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당시 종교와 문화와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이 점쟁이 소녀를 통해서 돈벌이를 하던 주인들이 바울과 그 동료인 실라를 잡아 고소를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데, 정작 그 죄목은 이 점쟁이가 점을 치지 못하게 해서 자기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아니고, 로마법과 로마풍습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하고 소란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이 로마와 이방 사회에서 박해를 받고 취조당하는 주요 이유가 되었는데, 이런 모습을 우리가 당시 바울이 헬라 세계에서 선교할 때 어떤 종교적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는지 우리로 하여금 상당히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도록 시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빌립보 교회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 의해 제 2차 전도여행 중에(A. D. 약 49년경) 설립된 유럽 최초의 교회였다. 이 교회의 설립과정은 사도행전 16장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아시아에서 선교를 하던 바울은 비두니아 전도를 희망했지만, 성령께서 허락하시지 않아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고, 거기서 밤에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타나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마케도니아의 부름’, 혹은 ‘마케도니아 환상’을 보게 되었다(행 16:9).
그리하여 바울은 아시아 선교를 중단하고 에게 해를 건너 빌립보의 관문인 네압볼리에 이르게 되었고, 이어서 로마의 국도인 에그나티아 도로를 따라 유럽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땅이 아시아 쪽에서 볼 때 마케도니아의 첫 성인 빌립보였던 것이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군사도시로서 아주 중요한 도로였던 에그나티아 도로의 도상에 있는 도시에 첫발을 들여놓고 교회를 세우게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바울의 빌립보 교회 설립은 선교 전략과 계획에 분수령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빌립보서 4:15절에서는 빌립보에서의 복음 선포를 유럽에서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①빌립보 교회 설립
빌립보 교회를 세울 때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 그리고 누가 등과 동행하고 있었다(행 16:10). 그 성에서 안식일이 되기까지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이 되어 바울이 찾아 간 곳은 회당이 아니라 문밖 강가였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빌립보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다는 말이 되기도 하며, 또한 유대인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회당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유대인 성인 남자 10명이 있어야 되는데, 회당이 성립되기 위한 최소한의 정족수인 10명조차도 빌립보에는 없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만일 빌립보에 회당이 있었다면 바울은 자신의 규례대로 회당을 찾아갔었을 것이다. 바울이 어느 도시에 가든지 먼저 회당을 찾아간 이유는 구원사에서 “복음이 유대인에게 먼저 선포되어야 한다.”는 신학적인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구약과 유대교를 알아서 복음을 받기에 준비된 사람들이 많이 있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안식일이 되어 바울이 찾아 간 곳이 회당이 아니라, 문밖 강가였다. 그래도 혹시 유대인이나, 또는 유대교와 접해서 복음을 영접하기에 준비된 사람들이 있지 않나 찾던 중에 빨래터에서 여자들을 만나 복음을 증거한 결과 두아디아의 자주장사인 루디아를 첫 그리스도인으로 얻게 된다. 사도행전 16:14절에 의하면 루디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 유대교의 회당에 다니고 있었던 자였다. 그녀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응답하여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유럽 최초의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후 바울일행은 루디아의 집을 선교의 기지로 삼고, 그곳에서 많은 고난과 능욕을 받아가며(살전 2:2), 심지어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며 계속 복음을 전한 결과 간수장과 그의 가족들, 점치던 여자, 유오디아 순두게, 글레멘트 등의 회심자들을 얻게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는 설립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이 교회의 구성원들이 예외 없이 이방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교회는 이방 그리스도인들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립보 교회의 설립과 관련하여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바울이 선교하는 가운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로마의 관원과 충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로마법과 로마 풍습에 어긋난다는 시민들의 고소를 받고 바울을 옥에 감금했던 로마 관원은 지금까지 판례가 없으므로 그 고소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후에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 나서는 기소한 죄가 성립될 수 없음을 알고 사과하고 조용히 떠나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바울이 유럽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판례를 남기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와 비슷하지만 이보다 더욱 공식적인 판례는 고린도에서 선교할 때 결정되게 된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인들의 고소로 총독 갈리오 앞에 끌려가게 되는 사건이다. 이때 갈리오는 바울의 말을 들어보고 무죄석방을 하는데, 무죄석방의 의미는 바울의 복음 선포행위가 로마의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이 판결은 후에 로마 관원들이 기독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매우 귀중한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로마제국의 군대와 행정관의 비교적 공정한 로마법의 집행은 로마제국의 효율적인 도로망과 더불어 바울이 로마세계에서 선교하는데 있어 매우 좋은 조건을 제공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설립된 빌립보 교회는 헌금에 열의가 있었고, 특히 바울에 대한 사랑이 어느 교회보다 뛰어난 교회였다(빌 4:15-16; 고후 8:1-4). 또한 특별히 빌립보 교회는 여자 성도들이 교회 내에서 상당한 역할을 감당했던 교회임을 볼 수 있다.
②바울과 빌립보 교회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아주 특별한 따뜻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바울이 그리 오랜 기간 빌립보에 머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간절한 사랑의 마음과 그들을 향한 기도의 내용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4:1절에서 그들을 부르기를,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사모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다(1:8). 이처럼 자기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 빌립보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을 보든지, 혹은 그 때 사용한 호칭만을 보더라도 바울이 이들과 얼마나 특별한 관계에 있었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바울이 극히 예외적으로 빌립보 교회로부터는 자기 개인 용도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고 하는 점이다(1:3-5; 2:25; 4:10-14). 우리는 언뜻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바울의 선교원칙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 바울이 선교원칙은 원칙적으로 ‘자비량 선교’였다. 즉 어떤 교회로부터도 재정적 지원을 일체 받지 않고 자기 손으로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자신이 값없이 받은 은혜의 복음을 돈을 받지 않고 값없이 선포해야 그 은혜의 성격이 더욱 나타나게 되기에, 복음의 은혜의 성격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일체 돈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적대자들이 선교를 빙자해서 자신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비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에서만은 예외적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았는데, 물론 4장을 읽어가다 보면 그것조차도 아주 불편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4:10). 하지만 빌립보 교회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은 것도 개인을 위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선포를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것은 바울과 빌립보 교인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하나의 증거이다.
이처럼 빌립보 교회는 바울 일행의 물질적 필요를 충당해 주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데도 힘을 같이 했다(4:3). 또한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바울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여러 번 쓸 것을 보내는 등 도움을 보냈다(빌 4:16; 고후 11:9). 또한 바울도 빌립보를 떠난 이후에도 빌립보 교회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는 디모데를 보내어 마케도니아 교회들을 돌보게 했고(빌 2:19; 행 19:21-23), 그 자신은 두 번 이상 그곳을 방문했었다.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사역을 마치고 겨울을 보내기 위해 고린도로 가기 전에 빌립보를 다시 방문했었고(행 20:1-3; 고후 2:13), 또 그 이듬해 봄에 빌립보를 방문하여 유월절 절기를 보내었다(행 20:3-6).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의 접촉은 이러한 방문뿐만 아니라 전달자들을 통하여도 수시로 소식이 오갔던 것을 보더라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와의 관계는 서로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나누었던 특별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행 18:5; 19:22; 고후 11:9; 빌 2:25).
빌립보서를 쓰게 된 상황
첫째, 바울은 이 편지를 감옥에서 쓰면서, 지금 디모데와 에바브도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천거하고 있다(2:10-30). 그 내용은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추천하고, 교회가 그들을 잘 받아들이도록 부탁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 이제 곧 빌립보에 당도할 그들이 그곳에서 잘 영접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혹시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빌립보 교회의 오해나 비판이 있다면 그것을 미리 풀어 해소하려는 점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2:23).
둘째,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보낸 편지와 헌금을 감사히 잘 받았다고 하는 영수증 성격을 지닌 감사의 글을 쓰고 있다.
셋째,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몇 가지 문제들을 이 편지에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듣고 보고를 받은 빌립보 교회 내의 분쟁 상황을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1장 후반부부터 2장까지, 또한 4장에서도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한 마디로 “교회 전체가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특히 4장에서 나타나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여성들로 빌립보 교회의 중요한 두 지도자였는데, 이 둘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이 두 지도자를 따라 교회가 분리위기에 처했는가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처럼 심각하게 이들에게 한 마음이 될 것을 권면하는 듯이 보인다(1:27; 2:3, 5; 3:15, 19; 4:2, 10). 바울은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겸손과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함의 예를 들어 그것을 본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바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4:2).”고 하는데, 이 명령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의 주권에 순종하기로 서약한 자들인 그대들이 어떻게 ‘자기주장’, ‘자기 뜻’만을 고집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하면서, 한 주님을 고백한 신앙고백에 합당하게 자신의 의지를 꺾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라는 권면인 것이다.
넷째, 빌립보 교회는 어쩌면 우리가 고린도후서 10:13에서 볼 수 있는 ‘유대 기독교 열광주의자들’에 의해서 복음의 이해에 혼돈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혼란을 가져오는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외부에서 침투한 자들인 듯한데, 그들은 외부에서 침투한 자들인 듯한데,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그들은 바울이 전했던 할례와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은혜의 복음을 반대하면서, 빌립보 교회의 이방 그리스도인에게 할례를 요구했다.
2)그들은 자신들의 영적 체험을 강조하면서, 그 영적 체험을 신자들이 ‘지금,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완성의 징표로 자랑했었다.
3)그들은 성도들에게 존재하는 현재의 고난을 무시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있을 구원의 완성에 대한 미래적 소망도 무시하면서 지금 현재 완전한 구원을 누리면서 승리자로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것을 흔히 ‘영광의 신학’, 또는 ‘승리의 신학(triumphalism)’이라고 하는데, 이런 영광의 신학에 도취된 자들이 빌립보 교회에 들어 와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미혹케 했던 것 같아 보인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빌립보 교회는 계속되는 핍박 아래 놓인 박해받는 교회였고, 외부의 핍박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아 보인다(1:28-29).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은 이 서신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의 배려와 보내준 선물에 대한 감사함을, 그리고 그들에 대한 자기의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고, 또한 교회가 믿음 위에 든든히 설 수 있도록 후속 목회지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바울의 모든 편지 중에서 이만큼 교회에 대한 사랑을 퍼붓는 편지가 드물 것이다. 바울은 핍박의 상황아래 놓인 성도들에 대한 위로와 외적인 이방인들의 핍박이나 유대 열광적 그리스도인들의 훼방에 맞서서 믿음에 굳게 서도록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빌립보서의 기록 목적
빌립보서가 기록된 상황을 바탕으로 우리는 빌립보서의 기록 목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 서신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사랑과 배려에 대한 하나의 감사장으로 쓰인 글이다.
둘째, 자신의 장기 투옥에 대한 변명(apology)을 위해 쓰인 편지이다.
셋째, 빌립보 교회내의 분쟁상황을 바로 잡고 일치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록되었다.
넷째,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를 혼란케 하던 유대 기독교 열광주의자들을 경계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록되었다.
다섯째, 계속되는 박해 아래 놓여있는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록되었다.
나의 생각: 시민권 빌립보서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하나의 단어가 바로 ‘시민권’이라는 단어이다. 당시 빌립보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고, 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시민권. 이것은 그들을 주변 야만인들 사이에서 로마 시민다운 구별된 삶을 살면서 로마 시민의 정신, 윤리, 가치관, 행복관, 인생관 등을 보여주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발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생활하라’로 번역된 ‘폴리튜에스데’는 본래 정치하다란 뜻이다. 여기서 ‘정치하다’라는 의미는 한마디로 정돈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복음에 합당하게 정치해나가라는 말은 복음에 합당하게 삶을 규제하고, 정돈하고, 복음이 제시하는 기준과 윤리를 따라서 살아가라는 말이다. 이 명령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적용하면, 교회는 세속적인 세상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세상의 정신이나 세상의 가치관대로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서는 안 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들이기 때문이고, 바로 그것이 복음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 시민의 정체성을 특징짓는 복음의 법은 한마디로 ‘사랑’과 ‘진리’, 곧 서로를 사랑하고 진리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할 범주는 단순히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삶 속에서도 그런 원칙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즉 교회 안에서든지, 가정에서든지, 모든 삶의 영역에서 복음을 기준으로 삶을 규제하고 정돈하며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것,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
나의 생각: 목회자와 교회의 관계 바울이 유럽 땅 마게도냐에 처음으로 세운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였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세운 동기와 역사적 의의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바울이 제 2차 선교여행 중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보고 마게도냐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로마의 식민지였던 빌립보로 글어가게 되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빌립보에는 유대인 회당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바울의 설교에 대한 그 곳 유대인들의 반발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으로 보아 빌립보 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도행전 16:14-15에 보면 기도처에 모인 많은 여인들이 언급되고 특히 자색 옷감 장수이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가 등장하고 또 빌립보서 4:2-3에서도 여인들이 등장하고 특히 그 여인들을 가리켜 바울이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여인들(4:3)”이라고 칭찬하는 것으로 보아 빌립보 교회에서는 여인들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여러 해 동안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활동에 적극 협력하였고 여러 번에 걸쳐 바울을 물질적으로 돕기도 하였다. 아마도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 중에서 가장 만족해했던 교회였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옥중에서도 계속 이 교회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넘쳐 있었다. 이 빌립보 교회와 바울의 관계가 오늘날 목회자와 교회의 관계에 좋은 모델이 아닌가 싶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빌 4:9)!” |
4. 골로새서 배경연구
골로새는 소아시아 브루기아 속주 리커스 계곡에 위치한 도시로서, 에베소에서 내륙으로 약 160km 동족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소아시아에서 수리아로 가는 중요 무역로 상에 위치한 동서 교통의 요충지로서, 자연히 동서 문물의 교류 장소가 되어 무역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인구가 많고 번창한 도시였다. 주로 거래가 많이 되는 품목은 양털과 그것을 가공하여 만든 양털 직물이었다. 이처럼 한 때 이 도시는 아주 중요한 상업 도시였지만, 인근 성읍들인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의 급성장으로 인해 신약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은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무역도시가 그러하듯 골로새도 많은 상인들과 여행객들의 출입이 잦은 관계로 각종 철학과 종교 사상이 혼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이곳에 세워진 골로새 교회는 각종 이단 사상이 침투하여 어려움을 당하였으나, 바울은 이곳에 올바른 복음을 선포하여 복음 위에 굳게 서도록 권면하고 있으며 주변 지역에 복음이 확산되도록 돕고 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며, 바울은 골로새서를 보내기 이전에 골로새를 방문한 적도 없다(2:1).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에 있는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이다. 에바브라가 골로새에 복음을 전한 것은 바울의 위임에 의한 것이었다.
골로새 교회에는 두 개의 가정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옥중에서 기록하였다. 그리고 에바브라에 대한 여러 언급들을 볼 때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혔던 것으로 보이며, 그가 사도 바울에게 골로새 교회의 사랑을 알려준 것 같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 교회의 형편을 듣고 편지를 써서 두기고를 통해 교회에 전했다.
종교적 배경
①키벨레(Cybele)를 섬기는 이교
곡식의 결실의 표상이며, 거대한 어머니 신으로 표현되는 키벨레를 섬기는 이교가 성행하였다. 또한 이 신을 섬기는 의식은 아주 강렬했는데, 열광적인 엑스타시와 동시에 금욕주의가 겸해지는 것이다.
②미드라(Mithra)를 섬기는 신비종교들
1세기 중반 로마 제국 내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종교로 다양한 민족들에게 종교적인 만족과 영원한 소망을 약속하는 미트라이즘과 같은 신비 종교였다. 바울 다시 골로새에서 미트라스를 섬기는 이 종교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③세상의 여러 구성 요소들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들
이방 종교들 외에 ‘세상 요인들’, ‘요소들’을 섬기는 것으로 이들의 종교적인 모습이 타나나기도 했다. 우리 성경에는 이것을 ‘초등학문’이라고 번역했는데 즉,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의 마력을 가진 힘으로 보고 이것들을 신으로 섬기는 것으로 추측된다.
④영지주의(Gnosticism)
영지주의는 바울서신을 해석하는데 아주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이것은 이 사상이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선교지 전체에 퍼져 있었던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인데, 당시 사람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어떤 모습으로든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지주의는 그 기원이 분명치 않은 일종의 혼합주의 사상체계로서 그 사상이 완전히 꽃 피운 것은 A. D. 2세기 중반이다. 이 사상은 헬라 철학과 동방의 신비주의와 유대교의 율법주의 등이 혼합하여 이룬 사상적 혼합주이로서, 그 세계관은 지극히 이원론적이다. 즉 신의 세계는 선한 반면 물질의 세계는 악하고,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것이다. 신은 아주 거룩하고 물질은 너무도 더럽기 때문에 그가 직접 물질계를 창조할 수 없었고, 신에게서 제일 멀리 떨어진 에온이 물질계를 창조했다고 본다.
⑤혼합주의적 유대교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으로만은 되지 않고 금욕적인 계율이나 유대교의 절기 준수, 율법준수를 함께 구원의 조건으로 삼았는데, 이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완전히 뒤엎는 거짓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또 후에는 몬타누스주의로 알려진 기독교 이설들도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골로새 교회의 상황
그리스도의 유일성, 그리스도의 구원자로서의 유일성과 절대성 그리고 세상의 통치자로서의 유일성”을 위협받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 예배도 골로새의 토착적인 혼합종교들의 광란적이거나 금욕주의적인 예배의식과 섞여서 진정한 사도적 전통이 위협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헬레니즘 종교의 특징인 혼합종교의 정신, 그래서 어떤 것도 그 체계 안에 녹여 가지고 그 혼합종교의 한 요소로 삼으려고 했는데, 바로 기독교의 복음도 지금 그러한 위협을 골로새에서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유일성, 그리스도의 절대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우주론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그 혼합 종교로 기독교의 복음이 녹아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생각: 이단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당시 골로새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이단적 성격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분명한 것 중의 하나는 유대주의적 영지주의 특성을 가진 혼합주의적 흐름이 골로새 교회에 퍼져가고 있어다는 것이다. 바울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 유대의식주의, 천사 숭배, 금욕주의 등을 경계하라고 한다. 이들 모두 다 그리스도를 좇지 아니하고 헛된 것을 좇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며, 우리가 붙들고 좇아야 할 분이심을 강력히 말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①기독론 문제: 골로새 교회의 있었던 이단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큰 상처를 입혔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한다. 이와 같은 골로새 이단성은 영지주의자들에 의해 크게 성행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며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부인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모든 피조물은 그에 의해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창조되었고, 그를 위해 창조되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통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만물이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밝히고 있다. ②철학(헛된 속임수): 바울은 철학 곧 헛된 속임수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2:8). 이는 골로새 교인들 가운데 이런 것들을 좇아가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같은 뜻으로 보면 될듯하다. 꼭 동의어가 아니더라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밀접한 관계로 결국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상당히 고상하게 보이는 철학도 결국은 미혹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헛된 속임수에 불과하다. 이런 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은 것이다. ③유대교 의식주의: 이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초하루나 안식일’과 관련된 법들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즉 그들은 유대교에서 강조하는 음식법과 절기법을 그리스도인들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갈라디아서에도 나타나며(갈 4:10), 아마도 사도 바울이 전하는 곳마다 와서 문제를 제기했던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런 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한다(17절). ④천사숭배사상: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천사숭배는 이단들이 천사들을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골로새에 들어온 이단들은 아마도 지극히 멀리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매개체로서 천사들을 숭배하고 경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감에 있어서 겸손함을 가장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를 통해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머리되신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것이다. ⑤금욕주의: |
중간 맺음 말…
여기까지 밖에 과제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읽을수록 깊이 빠져들어 연구하게 되어 지체되었습니다. 방학기간을 활용하여 나머지 부분도 탐구하여 제 것으로 삼겠습니다. 혹시 나머지 부분의 과제를 제출하라 하시면 2학기 시작과 함께 제출하겠습니다. 바울서신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에, 독자와 저자의 정황을 살펴보고 통일성과 상황성을 고려하는 좋은 방법론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글의 형식을 자유롭게 한 것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유롭게 쓰고 싶었습니다. 바울서신에 대한 접근법과 상황성, 배경 연구 등 유익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과제를 하면서, 로마서, 고린도전서, 빌립보서, 고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등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쉽기도 하고 궁금한 점은 다를 서신도 다루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5. 데살로니가 배경 연구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
위기의 발생원인: 임박한 종말에 대한 오해
①
②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교훈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올바른 삶
바울의 종말론
①
②
③
데살로니가전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맺는 말: 재림신앙을 회복하라
Chapter 3. 교회를 위한 바울 신학
1. 새 관점 학파의 칭의론과 21세기 한국교회
2.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와 그 현대적 의의
3.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바울의 기도
4. 바울이 고난 이해
5. 바울의 설교 연구
6. 바울의 부활 이해
7.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의 이상적 모형이 될 수 있는가?
8. 검증의 서신으로서의 요한일서의 의의
9. 바울 신학의 중심-1980년대 까지
10. 바울신학의 중심01980년대 이후
11. 바울의 구원론과 한국교회
12. 희생 제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
13. 한국교회의 구원론에 나타난 공로주의 사상
Chapter 4. 주해와 적용
1. 구원의 바른 이해에 따른 올바른 삶
2.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이 되라
3. 죽은 자의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4. 바울의 칭의론과 그 적용
5. 바울 서신에 나타난 δικαιοσύνῃ θεου 이해를 위한 예비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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