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신약신학

양의 목자와 양

예림의집 2014. 9. 21. 21:54

 

양의 목자와 양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본토, 친척 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하란에 머물던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는데 고향과 아비 집을 떠난 아브람은 정착생활이 아닌 목축을 하며 나그네 생활을 하였다. 이후 이삭, 야곱 시대를 지나 애굽에서 430년, 광야 40년 동안 목축을 하며 지냈습니다. 이처럼 목축이 근간이 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참 목자이셨고 그들을 목자가 양을 책임졌던 것처럼 지켜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참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보이는 목자를 원했다. 하나님께서는 대리 목자였던 왕, 종교지도자들을 통해 통치를 하게 하셨지만 참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었고 징계를 받아 흩어지게 되었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포로 귀한 후 유대인의 삶은 새로운 각오로 참 목자를 구하는 삶을 살았지만 구약의 목자상은 중간시대를 지나며 많이 변질되었다. 신약시대 목자는 아주 천한 직업으로 인식되었고 종교지도자들도 목자에 o해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는 좋지 못한 사람들이라 가르쳤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인데 너희들은 선한 목자인 내 음성을 듣지 못하기에 내 양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선한 목자’선언과 ‘내 양이 아니기에 내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는 선언은 유대인들이에게 참으로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자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양이었던 것을 기억하시고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어쩌면 세월이 흘러 의미가 바뀐 목자와 양과의 관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통해 많이 말씀하셨다.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시며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고 큰 무리를 보신 후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시고’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막 6:34). 이것은 구약시대 목자와 양과의 관계 개념으로 이해할 때 목자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양들의 모습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작농으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목축을 하는 사람도 적지는 않았다. 다만 로마시대가 된 후 목자와 양과의 관계가 구약시대처럼 모든 유대인 남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생활 속에서 경험되는 게 아니었고 목자가 지저분하고 야심 없는 천한 신분으로 개념이 바뀌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구약시대와 같이 직접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4복음서에 유대인 목자가 양을 치는 사건이 기록된 사실은 없다. 많은 목자와 양과의 관계에 대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등장한다.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목자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들은 아마도 유대인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학자들은 이들을 레갑 자손으로 생각하는데 레갑 자손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민족이었던 겐 족속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가끔 양과 목자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잘 알아야 했다. 하지만 당시 목축보다는 소작농 개념의 농사를 지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깨닫는 사람들은 더욱 천하게 여겼던 목자들이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은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풍습이 달라져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시대는 성경 시대와 비교할 때 시대도 다르고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약시대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바뀐 환경 때문에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면 이 시대에는 더욱 간격이 클 수 있디 대문이다. 성경 시대의 생활 풍습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