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약신학 연구의 간략한 역사와 방법론
앞에서 논의한 대로 지쯤까지 성경(신약)은 교회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으로서 받아들여지면서 그중 특별히 성경 저자들의 사상(저자의 의도/성경의 의도)은 이러한 규범들을 반추해 보는 신학적 출발점이 되어 왔다. 이 경우에 산약신학은 본문 가운데 있는 신약저자들의 사상(신앙/신학)을 보다 통일적이며 체계적으로 서술(건설)한 것으로서 다음세대의 신앙의 확립과 전달을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신약신학의 이해는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신약신학의 모습들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봄으로써 신약신학을 보다 적절히 서술(건설)하는데 큰 통찰을 얻을 수 있다.
1. 1 조직신학의 일부분으로서의 신약신학:
종교 개혁이래로 비록 신학이 성경의 내용에 일치해야 된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여전히 교리학을 위한 혹은 교리학 아래에서의 검증 문헌들로 취급되어져 왔다. 즉 교리적 진술로서 이해된 신약신학은 검증문헌들의 집약들로 이해되어졌다. 이것은 종교개혁 이후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to-the Bible)는 기치를 가진 경건주의 속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745년에 비로소 성경신학은 교리학(조직신학)으로부터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졌고 성경신학은 교리학의 기초가 되어졌다(Hasel 1978:18). 이와 같은 흐름 가운데 (신약)성경신학은 계몽주의를 통해 새로운 국면인 역사-피평적 방법에 접어든다. => 여전히 지시적(still prescriptive) 방법. 신학자(theologian)로서 연구.
1. 2 역사-비평적 접근:
‘새 해석학(New Hermeneutic: 해석학의 파라다임의 일대변혁이라고 불려짐)’이라고 불려지는 역사-비평적 방법은 본문(저자)의 상황을 무시한 비역사적이고 탈-역사적인 교리적 연구에 대한 일종의 반발(반동)로 나타났다. 역사-비평적 방법은 본문의 역사적 기원들(초대교회)에 대한 종교적인 이해나 혹은 특정 시기의 저자들 가운데 구체화된 대로의 ‘성경적 종교’를 서술하기 위하여 성경의 통일성을 거부하고 성경 내의 전승들의 다양성을 강조함으로써 본문을 파편화시켰다. 여기에 나타난 주된 관심은 ‘초대 ㄱ독교 종교와 신학의 역사[기원]’을 연구하는데 있다.
역사-비평적 방법의 특징들로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➀‘신약성경의 종교’에 대한 “순수 역사적 혹은 저술적 방법”으로 불려지지만 사실 이것은 단순한[객관적인/가치-중립적인]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신약의] 종교적 전승을 비신화하기 위한 일종의 ‘배후이념’으로 그 실행을 위해서 ‘기능적 무신론’을 요구한다. 이 경우 신약신학의 연구란 철저히 역사가(historian)로서 연구를 의미한다.
➁ 역사적-비평적 방법은 그 방법론에 있어서 ‘객관적-과학적인 중립성’을 강조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며 실제는 환상과 허구이다. ‘과연 역사-비평적 방법은 순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은 최근 과학 철학에서 논란이 되어 왔으며 이것은 객관주의와 실증적 역사주의의 이념과 가치판단에 대한 비평을 통하여 입증되어졌다.
➂역사-비평적 방법은 본문 자체(의 세계)보다는 ‘본문 배후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본문은 본문 자체 혹은 본문의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이 세계를 보는 ‘창문’으로 수단화되어졌다.
*요한 필립 게블러(John Philip Gabler):
1787년 Altdorf 대학의 취임 강연에서 게블러는 교리학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순수 역사적 학문’으로서의 성경신학의 역할을 선언하였다. 게블러의 성경신학은 성경신학의 귀납적, 역사적, 서술적 방법을 제안한 것으로서 이 방법에 따르면 성경신학은 성경의 신적 영감을 배격하고 [인간] 저자의 사상을 탐구하는 일 즉, 각권 저자들의 [종교적] 사상들과 개념들을 주의 깊게 수집하는 일을 말한다. 이러한 역사-비평적 이해는 게오로그 로렌즈 바우어에 의해 신약을 다양한 시대에 따라 종교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보다 철학적으로 다루어졌다.
1. 3 변증법적 접근:
역사비평이 주장하는 ‘완전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중립성’에 의해 건설된 역사적 사실이란 하나의 허구(가설적 사실?)로 입증되었을 뿐 아니라, 이 방법은 또한 역사상의 우리의 존재(실존)에 아무런 의미나 해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사실, 역사비평을 토하여 산출된 순수 객관적 ‘재건[들]’에는 학자들마다 상호일치가 없고 옿려 본문은 그 자체의 의미를 상실하고 역사적 사실을 찾기 위해 파편화되었다(자료비평의 예). 물론 역사-비평적 방법이 전적으로 무용하다든가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비평이 지닌 허구와 환상은 새역사주의나 실존주의를 통하여 맹렬한 비평을 받았다. 특히 순수 객관주의를 추구하였던 역사비평은 인간 실존을 무시한 학자들의 흥밋거리에 불과하지, 부조리하고 억압된 인간 실존에 대한 현실적 참여는 없었다. 이 방법은 특정 종교(기독교)의 이념으로부터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분리를 주장하였지만 실제는 특정 이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특정 이념(전제)에 대한 또 다른 밀착이었다. 결국 이러한 역사-비평적 방법의 한계에 대하여 불트만은 변증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실존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➀불트만(Bultmann)
불트만은 신약신학에 대한 탐구를 종교사적이고 실존적인 이해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재건’과 ‘해석’의 두 개념을 해석학적으로 병합함으로써 신약신학의 이해의 기초로 삼았다. 여기서 불트만이 말하는 ‘재건’이란 역사적 사실(과거)의 한 현상으로서 초대 모습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문헌의 [실존적] 해석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재건[일종의 가설적 재건]을 의미하는 것 즉, 신약의 케리그마의 재건으로 이것은 소위 그의 ‘비신화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특별히 불트만의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신앙)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구분은 오랫동안 신약신학의 연구에 태풍의 눈이 되어왔다.
이와 같이 불트만은 실존적 해석을 위해서 한편으로는 역사비평을 사용(역사비평의 전제를 받아들임)할 뿐 아니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비평을 비판하는 ‘변증법적인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 그의 실존주의적 변증법적 방법론은 많은 신약학자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어왔다. 특히 그의 ‘신약신학’은 그의 주석과 그의 신학의 병합으로 이해되어진다.
*참고: 불트만의 신약신학(재건과 해석)
불트만의 신약신학은 역사비평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방법을 통해서 실존주의 해석의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실존주의 해석을 위한 역사비평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방법이란 ‘순수 객관적 사실(곧 진리)’의 건설을 위한 역사비평의 전제와 그 추구의 무의미함과 허망함을 비평함과 동시에 인간실존과 관련된 초대교회의 ‘신앙적 메시지’의 재건을 위하여 역사비평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불트만에 따르면, 역사비평의 전제인 인간이성에 의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완전한 중립성’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과 이것에 의해 수립된 사실들이란 곧 완전한 객관적 진리라는 결론은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 역사비평이 말하는 인간의 이성이란 결코 순수 객관적이거나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다. 오히려 이성에 의해 수립된/건설된 순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이란 이성을 사용하는 자의 전제 혹은 선 이해에 따라 건설된 사실성(가설적 사실들)에 불과하다.
불트만에게 있어서 역사비평의 객관적 사실성(진리)에 대한 탐구와 노력-즉 절대 이성(비평)에 의해 객관적 사실성을 건설함으로써 진리를 찾고자하는 역사비평의 시도와 노력-은 인간실존의 문제를 외면한 무의미한 객관주의의 해석적 시도일 뿐 아니라 하나의 헛된 망상이었다.
그러므로 불트만은 이러한 무의미한 순수 객관주의적 역사비평의 탐구를 지양하고 그 대신에 역사비평의 방법을 통해 인간실존에 의미를 주는 초대교회의 [실존적] 삶의 정황(Sits im Leben Ecclesiae)과 그에 대한 초대교회의 ‘신앙적 메시지’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주석(비신화화 작업과 변증법적 방법)’과 ‘신학(케리그마의 신학)’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불트만에게 있어서 이와 같이 건설된 ‘신앙적 메시지’는 오늘 우리의 ‘삶의 정황(실존)’에 소망과 격려를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메시지였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불트만의 신약 신학은 기존의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추구된 신약신학보다는 신약의 가치를 부정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약의 가치를 크게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불트만에게 있어서 신약(비록 볼트만이 신약을 초대교회가 공교히 만든 신앙적 산물인 ‘신화’로 여겼다 할지라도)은 -초대교회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실존적 문제에 해답을 주는 의미 있는 문서였고 이 신약문서로부터 그는 소위 초대교회의 ‘신앙적 메시지’를 재건하고자 하였다. 신약문서를 비평적 시각(비신화화 작업)을 통해 건설한 초대교회의 ‘신앙적 메시지’들을 체계화한 그의 이러한 신학적 재건을 우리는 불트만의 ‘신약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앞에서 논의한 대로 그의 ‘신약의 신학(Theology of NT)’은 철저히 우리의 실존을 위한 ‘신약 신학(NT Thelology for)임을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불트만의 ‘[비평적]재건’과 ‘[실존적]해석’을 통해 기술된 그의 신약신학은 신약신학의 과제가 단순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의미산출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그것은 항상 오늘 우리의 상황에 의미효과를 가져다주는 학문으로서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길잡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트만에게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의 [역사-비평에 근거한] 성경관으로서 신약의 역사적 본질에 대한 그의 이해(신화로서의 신약)는 우리의 역사적 신앙을 와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됨을 보게 된다. 결국 신약신학은 신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터 위에서의 신약 자체의 신학(의미건설)임과 동시에 이 신학은 항상 오늘 우리에게 의미를 던져주는 살아있는 신학(의미효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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