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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세족식을 하는 것입니다.

예림의집 2013. 9. 28. 09:17

이럴 때 세족식을 하는 것입니다.

 

수련회 때가 되면 프로그램 안에 세족식을 넣어 감행하여 남다른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세족식을 실행함에 따라 교인들의 유대관계를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아니면 선생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거나 스승의 날에 행해지는 이벤트성 행사를 갖거나 회사의 새로운 개선을 위해 사장이 사원들을 발을 씻기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성경에 나오는 세족식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행해진 사건은 자못 비장한 장면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또한 이 땅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행해진 일로 보통의 결심이 아닌 특별한 결단의 사건임을 깨달아야 한다.

 

저녁 시간에 엄마가 아이의 발을 씻어주는 그런 일상이 아니다. 선생이 제자들에게, 사장이 직원들에게,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발을 씻어주는 이벤트가 아니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성경과 같이 세족식을 해도 예수님이 행했던 세족식의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겨 준 것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으며 제자들도 더 이상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가운데 행해지는 세족식을 흉내 내는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각오가 섰다면 세족식을 행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수께서 저녁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옆에 두시고 수건을 두르셨다. 그런 다음에,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이런 행위가 제자들의 마음에 어떤 의미로 각인되었을까? 구구절절이 해석하게 되면 알레고리칼하게 해석이니 영해니 이런 비평을 가져오게 된다.

 

저녁 식탁애서 저녁은 진리를 깨달음의 차원을 의미하며 교환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위치와 신분이 교환되어졌다면 세족식을 거행해도 된다. 그러나 옛 것에서 새 것으로 뒤바꿔지지 않으면 세족식을 감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자리가 바로 세족식을 행하는 자리며 말씀이란 물로 영혼의 의미가 담긴 발을 씻어내는 것이다. (인디언들이나 아프리카인들이 발을 구르며 춤을 추는 행위는 영혼을 불러내는 행위 중에 하나임)

 

예수님의 깊은 뜻을 갖고 행하고 있는데 베드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집을 부리며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에 예수님을 즉각“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내가 하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에 따른 반응으로 베드로는 '주님, 그렇다면 제 발만 씻지 말고, 제 손도 씻어 주십시오! 제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라고 욕심을 부린다.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리고 제자들의 발만을 씻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접하는 우리들로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왜 발만 씻겨야 되는지 의문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발이란 단어와 연관된 단어를 찾는다면 아마 수십 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천국이란 단어‘바실레이아’(basileiva)라는 분석해 보면‘바시스’(basi")란 단어의 원형에서 파생되었다. 이 단어는‘기초, 발, 걷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옛 것에서 새 것으로 바뀐 것은 천국을 향하여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 발에 힘이 생겼다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세족식은 단순히 과거의 죄를 씻는 차원의 행사가 아니다.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고 기초를 닦아주며 그 길을 갈 수 있는 발의 힘을 얻게 하는 것이 세족식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내가 너희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이해하겠느냐? 너희는 나를‘선생’이라 부르고‘주’라고 부르는데, 맞는 말이다.

 

내가 정말로 너희들의 주(主)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이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모법을 보였으니, 너희도 내가 한 그대로 하여라. 천국의 길을 안내하기 위해 길을 만들어 주고 기초를 닦아주며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발의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단순히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에게, 아니면 부모가 자녀에게, 교사가 제자에게, 상사가 직원이나 사원에게 발을 씻겨주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세족식이 아니다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벤트로 여기며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고려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족식 장면을 묵상하다 이런 적용을 해 볼 수 있다. 왜 주님은 하필 발을 씻겼을까? 주님도 한자어를 아셨던 것일까? 어느 목사님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다면 이력서(履歷書)란게 신발 이(履), 다닐 력(歷), 기록 서(書)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못다한 일들을 너희가 이어 가라는 뜻(?)으로 본다면 우리 모두 다 이력서를 새롭게 써야겠다.

 

주님은 스승의 날이 아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런 일을 행하셨다. 자신이 져야 될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한 단절의 아픔을 겪기 바로 전 자신만의 감당해야 될 일을 눈앞에 두고 행해지는 거룩한 예식이다. 단순히 이벤트로 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런데 교회나 각 기관 단체에서는 이벤트로 하고 있다.

물론 임하는 자세가 다르고 목적의식이 남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긴 것은 혼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를 다루는 행위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세족식을 시행할 경우, 예수님께서 죽음을 임박한 가운데 행해진 목적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교인들에게 세족식을 감행하려고 한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앞 둔 자세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또한 옛 것에서 새 것으로 뒤바뀐 상태, 어둠에서 빛으로 교환된 상태에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맛보기 전이나 맛 본 후에 감행해야 할 것이다.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기초가 다져져 있으며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발의 힘을 얻어야만 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앉은뱅이가 성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다리에 힘을 얻어 걷거나 뛰는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되기 위해서 세족식을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족식이 감행되어졌으면 한다.

 

어느 특별한 날만을 고집하며 세족식을 감행하지 말고 그리고 실질적으로 세족식을 하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과정에서 말씀을 듣는 성도들에게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의 발을 씻겨주는 말씀을 증거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설교시간은 단순히 설교를 듣는 시간이 아니다.

 

세족식이며, 성만찬시간일 뿐만 아니라 세례 및 침례식을 행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예식을 결부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한 모든 예식의 원형과 본질을 상실한 채 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세족식을 사람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성경적인 세족식을 감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