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약서론 연구를 위한 문헌-신약성경
신약서론 연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책을 하나 꼽는다면 바로 '신약성격;이 될 것이다. 동시대에, 같은 믿음을 가진 기자들에 의해, 동일 언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사복음서는 각각 전달하는 내용이 분명하지만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역시 함께 사용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에베소 교회에 대해 알고 싶다면, 사도행전 18-20장, 에베소서(1:1), 디모데 전서(1:2), 디모데 후서(1:18; 4:12), 요한계시록(1:11; 2:1)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도행전 1-19자을 통해 어떻게 해서 에베소 교회가 소아시아 지역의 중심 교회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동시에 20장 17-35절의 '밀레도 설교'를 통해, 장차 있게 될 에베소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그것은 29-30절에 있다. 밖에서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와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안에서는 장로들 중에서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다. 왜곡된 목적을 가진 지도자의 문제가 장차 예상되는 에베소 교회의 문제이다. 이로부터 3-4년쯤 지난 후 기록된 에베소서를 보면, 바울은 복음의 내용을 정리한 후 먼저 지도자에 대해 권한다. 교회 내에 지도자를 세운 목적이 무엇인가? 4장 11절 이하에 보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세운 이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으려 하심이라." 에베소서가 쓰이고 수년이 지난 후 에베소 교회의 사역자가 된 디모데에게 주어진 서신에 '감독과 집사'에 대한 말씀(3:1-13)과 같이 지도자에 대한 언급이 잦은 것도 이 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을 통해서는, 이러한 지도자에 대한 문제가 에베소 교회 내에서 잘 해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2:2)",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것을 드러냈고(2:2)",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다(2:6)." 그런데 지도자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부족한 게 생겼다.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된 것이다(2:3)."
데살로니가저너에는 왜 칭찬이 많고 고린도전서네은 왜 책망이 많은가도, 두 서신과 사도행전을 비교해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어린 교회이고 고린도 교회는 어른 교회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젖먹이에게 젖을 먹이는 '유모(2:7)' 라고 제사되나,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는 그들이 아직도 '어린 아이'임을 못마땅해한다(3:1-2).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시, 데살로니가에서는 세 안식일만 강론하며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 하였다(행 17:203). 이후 "자발적 모임 제한법"으로 추정되는 최를 어겼다는 고소로 인해 데살뢰가에 머물 수 없었다. 베뢰아를 지나 아덴에 온 바울은 몇 주밖에 안 된 아기를 버리고 온 산모의 심정으로 디모데를 보내게 된다. 이 때의 마음과 디모데가 돌아와 기쁜 소식을 전했을 때의 마음이 데살로니가전서 3장 1-10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간 그는 죽을 지경이었으나 이제는 염려를 놓고 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러한 정황을 사도행전에는 18장 4-5절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따. 고린도에 와서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와 일하며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한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핵심 진리는 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고(18:5) 그제야 박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18:6). 세 안식일밖에 전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책임지신 것을 전해 들으며, 바울은 고린도에서 동일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을 믿고 예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날 밤 예수님은 바울이 그간 '침묵'했다고 생각하시는지, "침묵하지 말고 전하라"고 명하신다(18:9). 그 결과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가르친 교회가 고린도교회이다. 그러므로 갖가지 문제에 휩쓸려 분쟁 속에 휘말려있는 고린도교회에, 고린도전서에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책망이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칭찬이, 고린도교회에는 책망이 많이 주어지는 이유는 교회가 어린가, 어리지 않은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2차 전도여행지를 돌아보던 때에, 특별히 "헬라"라 불리는 지역에서 석 달을 머물던 때에(행 20:3) 고린도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로마서의 권면은 로마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사도행전 28장 11-15절에 보면, 이 점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다. 로마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맞으러 나오되,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마중 나왔기 때문이다. 보디올에서 로마까지는 208킬로미터(130마일)로, 당시 잘 걷는 사람의 경우에 닷새 정도 걸렸다고 한다. 압비오 저자에서 로마까지는 69킬로미터(43마일) 정도로, 이틀 정도 걸렸다고 한다. 삼관에서 로마까지는 53킬로미터(33마일) 정도로 도보로 하루 반은 걸렸을 것이다. 바울은 보디올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바울과 죄수들을 호송하는 일행이 보디올에서 압비오 저자까지 삼 일쯤 걸렸다고 보면, 보디올에 도착한 후 열흘이 지났다. 한편, 바울에 대한 소식을 로마에 전하러 누군가 보디올에서 떠났다고 하면, 로마까지 가는데 5일 걸리고 소식을 들은 로마 성도들이 곧바로 출발하더라도 압비오 저자까지 이틀은 걸리니, 이동 간에 필요한 시간만도 7일이다. 여행 준비 등을 생각할 때, 바울이 보디올에 도착한지 열흘 만에 로마의 형제들이 압비오 저자까지 마중 나온 것은 정말이지 애쓰지 않았다면 불가능해 보인다. 왜 그들은 죄수 바울을 이렇게까지 마중 나왔을까? 로마서를 받고 적용하여 큰 유익을 누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마중 나온 로마교회 성도들을 보는 바울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행 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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