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설 요약과 비평
문서설 요약
(모세오경-9장 오경의 저술을 중심으로: 고든 웨함 지음, 박영대 옮김, 성서유니온선교회, 2007.)
1. 문서설의 기원
“오경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오경을 누가 기록하였는가?”란 질문은 지난 두 세기 동안 구약연구에 있어서 가장 큰 이슈이다. 모세의 저작을 인정하는 전통적인 견해와 모세의 저작을 인정하지 않고 후기에 여러 가지 문서들을 편집하여 완성되었다는 주장(문서가설)은 지금도 많은 논란과 반박 및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문서가설은19세기 말에 그 명확한 형태가 형성된 이래 거의 1세기 동안 신학계를 지배하였다. 15세기의 르네상스와 16세기의 종교개혁, 그리고 17-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의 영향을 받아 성경이 기록된 상황에 대한 연구와 이 작품들 가운데 가장 비평적인 본문들을 확립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성경이 많은 기적과 예언을 포함하고 있고 하나님의 책이라고 주장함으로, 성경도 비평적인 조사의 대상이 되었다.
토마스 홉스는 모세의 죽음이나 여러 시대착오적인 기록 등 모세의 저작설을 부정할 만한 몇 가지 특징을 지적하고 있다. 하비스는 에스라가 오경의 초종 편집자라고 생각하였다. 베네딕트 스피노자는 오경이 모세를 3인칭으로 말하고 있고, 그의 죽음을 기술하며, 후대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모세가 오경을 썼을 리 없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의 이신론자들은 세상을 창조한 신은 창조 후에는 더는 기적이나 예언이나 성육신을 통해 이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①단편가설: 한명의 오경 저자나 편집자가 다양한 자료를 이용하여 그것을 한데 엮어 일관된 진술을 형성하였다는 견해다. 저자나 편집자는 어느 정도 단편의 표현들을 자유롭게 고칠 수 있었지만, 그 자료의 개별적인 특성을 모호하게 할 만큼은 아니었다. 19세기 초 단편 가설을 선도한 두 명의 유력한 학자는 스코틀랜드의 사제 알렉산더 게데스와 독일 학자 요한 세베린 파터다. 게데스는 오경이 모세 시대나 그 이전 시대에서 유래한 단편들을 편집한 책으로서, 솔로몬 시대에 한데 모았다고 주장한다. 파터는 자료의 연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이 자료들이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 유다에서 한데 합쳐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②보충가설: 원래의 짧은 작품이 여러 시대에 후대의 저자들에 의해 확장되었다고 본다. 다양한 저자는 저마다 다른 문체와 관심사가 있기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썼을 것이다. 보충 가설은 오경이 계속해서 개정되었지만, 그때마다 이전 작품들을 제거하거나 변경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눈덩이처럼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자료들을 포함하면서도 그 자료들의 독특한 특징들을 보존하였다는 것이다. 보충가설은 1830년대와 1840년대 독일에서 유행하였으며, 당대의 주도적인 학자로는 에발트와 드 베테가 있었다. 그들은 일련의 층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세기 후반에는 이 두 가설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이 자료들은 창세로부터 가나안 정복에 이르는 세상의 역사에 대한 두 가지 버전, 아브라함시대부터 정복까지의 다른 한 버전, 그리고 넷째 버전인 신명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아스트뤽은 모세가 그 자료들을 한데 수집하였다고 생각했다. 모세가 어떻게 창세기를 저술하였는지에 대한 아스트뤽의 이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지만, 중복과 하나님의 이름의 변경이라는 기준으로 책을 분석한 그의 원리는 후대의 논의에 기초가 되었다.
2. 율리우스 벨하우젠의 5경 문서가설
율리우스 벨하우젠은 오경의 확장에 관한 문서가설을 확립한 독일 하자로서, 그는 네 가지 주요 자료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래의 표로 그의 주장을 요약한다.
자료 |
하나님의 이름 |
특징 |
내용 |
J(Yahwist) |
여호와(Yahweh) |
내러티브 |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24장까지의 50%; 민수기의 단편들 |
E(Elohist) |
하나님=엘로힘(Elohim) |
내러티브 |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24장까지의 33%; 민수기의 단편들 |
D(Deutronomist) |
여호와 너희/우리 하나님 |
설교 |
신명기 |
P(Priestly) |
하나님=엘로힘(Elohim) |
목록, 예배에 관한 법들 등 |
창세기의 17%; 출애굽기 25장부터 민수기 36장까지 |
자료 분석을 위한 두 가지 기준은 하나님의 이름과 자료의 중복이다. 하지만 다른 자료에 속한 자료의 다양한 장르들, 목록들, 내러티브들, 설교들이 있다는 것은 다른 자료들은 다른 문체들을 가지고 있음을 뜻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처음 문서 가설을 주장했을 때 아스트뤽은 주전 13세기경 모세가 사용한 문서를 복원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벨하우젠이나 드라이버가 주장한 문서 가설에 따르면 이 문서들은 훨씬 후대의 것이며, 모세와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아주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고 주장한다. 벨하우젠의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이스라엘의 종교의 진화 과정을 다섯 영역으로 관찰하고,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다소 질서가 없고 규례도 단순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료제도가 발전하고 법도 좀 더 세밀하고, 더 엄격한 준수를 요구하게 되었다.
②역사서와 오경에 나오는 희생 제물에 대해서도 비슷한 접근 방법을 취하여 설명한다.
③이런 비슷한 발전 과정을 절기의 기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벨하우젠의 다양한 시대와 자료의 특징들
|
초기 왕정/JE |
후기 왕정/D |
포로 후/P |
예배 장소 |
거룩한 장소는 어디든지 |
예루살렘으로 모든 예배를 중앙화 하려는 시도 |
예루살렘 성소에서만
|
희생제사(제물) |
자발적이고 흥겨운 가족 행사 |
예루살렘에서만 희생 제사가 가능하지만, 비종교적으로 생축을 잡는 일은 어디서나 가능함 |
상세히 규정된 희생제사와 속죄하는 제사
|
절기 |
지방의 추수를 축하하는 행사 |
예루살렘까지 순례할 것을 요구함 |
달력으로 고정된 절기, 추수가 아닌 역사와 관련됨 |
제사장직 |
누구나 제사자이 되어 제사를 드릴 수 있음 |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이 중요해짐 |
큰 권위를 갖고 잘 규정된 제사장직 |
제사장의 수입 |
자발적으로 드린 제물의 일부 |
희생제물 중 앞 넓적다리, 양볼, 위 |
많은 희생 제물들, 십일조, 첫 소산들 |
벨하우젠의 연구의 특징 P(예배)자료가 후대에 속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데 있다. 초기의 학자들은 P자료가 오경에서 가장 오래된 자료이며, 이른 시기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한 공식적인 지침서였다고 믿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문서 가설은 주류 프로테스탄트 교파와 일반 대학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졌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가톨릭교회도 문서 가설의 유효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정통 유대인들과 이런 주장이 성경의 영감을 훼손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이다. 20세기 대부분의 시기 동안 이 가설은 큰 도전 없이 수용되었다.
3. 문서가설의 완화
①알트는 성문 자료들에 관한 한 문서 가설의 결론을 수용하였지만, 결국엔 성문화된 문서에 편입된 구전 전승들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원했다. 족장들에게 주신 몇몇 약속의 기원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있고 주장하였다. 이스라엘 법에 관한 연구에서 알트는 사례법과 절대법로 구분하였다.
②노트와 폰 라트가 알트의 견해를 이어받고 있다. 둘은 모두 다른 방법으로, 현재 오경의 메시지가 기본적으로 초기 형태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였다.
③오경이 후대에 형성되었는데도 그 역사적인 확실성만은 지지하려는 시도가, 미국에서 올브라이트와 그의 학파, 그리고 탁월한 그의 동료 여행가들인 스파이저와 고든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그들은 모두 창세기의 본문들이 고대 세계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고대 근동의 자료들에서 나온 비교 증거에 호소하였다.
④존 브라이트는 그의 책 History of Israel(1972, p. 9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하고 확신 있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들이 역사적으로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문서 가설이 주는 부정적인 인상은 제거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오경은 훨씬 후대에 기록되었지만,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서 볼 때 오경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실제 일어난 일 사이에는 근본적인 연속성이 있다.”
4. 합의의 붕괴와 통일성을 강조하는 경향
현재 상황은 매우 복잡해졌다. 많은 학자가 대체로 혹은 부분적으로 문서 가설을 거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종종 서로 모순되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문서 가설은 두 주요 기둥에 의존하고 있다. 하나는 자료의 확신이고 다른 하나는 그 연대다. 두 기둥 모두 오늘날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으론, 문서 가설에서는 섞여 있는 것으로 보는 본문들이 실제로 통일체이기에, 자료를 구분하는 기준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론, 오경 안에 분리된 자료들을 확인하는 사람들은 관례적으로 따르는 연대를 반박한다.
최근의 성경 연구는 본문의 최종 형태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문학 비평의 접근 방법을 통해서 자극을 받았으며, 부분적으로는 정경비평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경비평은 교회가 권위로 인정하고, 따라서 연구의 초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성경의 초종적인 혹은 정경적인 형태라고 주장한다.
오경에서 문서 가설이 자료들을 가장 주의 깊게 쪼개고 있는 책이 창세기다. 창세기 이후에 책들에서는 긴 자료 단락이 한 자료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잘게 쪼개서 본문을 읽는 방식이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창세기에서 자료는 주요 자료인 J와 E와 P로 나눌 수 있으며, 이것들은 종종 서로 뒤섞여 있다. 드라이버는 이렇게 말한다: “JE분석의 상세한 부분에서는 종종 불명확한 점들이 있으며, 이는 기준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세기의 최근 연구에서는 전통적인 J와 E로의 자료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화이브레이는 단편, 보충, 그리고 문서 가설 등 다양한 오경의 저술 모델 가운데, 문서 가설이 가장 증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첫째, 비논리적임 자기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반복과 문체상의 차이에 대해서 이보다 더 나은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5. 자료의 연대
①화이브레이는 주전 500년경이라고 주장한다. 벨하우젠의 오경의 편집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②존 반 시터즈는 분석과 오경의 연대를 모두 반박하였다. 그는 보충 가설을 가지고 작업하였다. 그는 수세기에 걸친 오경의 발전 과정을 추적한 후 오경이 주전 300년경에 완성되었다고 믿고 있다.
③롤프 렌토르프와 그의 제자 에하르트 블룸이 문서 가설에 대한 반박을 주도하였다. 렌도르프는, 본래 짧고 독립된 전승에서 큰 단위의 누적 과정을 통해 발생하며, 마지막에 현재의 오경 형태로 편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블룸이 찾아낸 자료들을 보면 전통적인 자료 문서들과 비슷해 보인다. 자료 분석과 연대에 대한 논쟁들은 대부분 창세기와 출애굽기 앞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나의 문서설에 대한 비평
서두에서 던진 질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오경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오경을 누가 기록하였는가?”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반대하는 주장들은 문서설 외에도 단편설, 보충설, 신문서설, 발달설, 최신문서설 등 다양하다. 왜 그들은 모세의 저작을 의심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연구와 학설을 발표하는가?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이 인지하고 있던 하지 않던 간에 “성경의 권위의 약화”인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거룩한 도모에 의해서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경을 단지 시대적인 필요에 의해서 인간에 의해 편집되어진 책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5경이 4가지(JEDP)의 자료에 의해서 먼 후대에 정치적, 종교적인 목적으로 편집되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책이란 말인가? 문서설의 주장을 결과적으로 ①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되고, ②성경의 영감설을 부인하고, ③성경의 능력을 부인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의 문학작품이나 유전, 전설, 역사적 기록, 고전 등에 불과하게 만들어 버렸다. 문서설의 주장들을 몇 가지 반박해 본다.
1. 하나님의 이름의 다름(여호와:Y자료, 엘로힘:E자료 설)
하나님의 이름의 차이점들은 오경에 관한 현대이론에 열쇠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문서설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창세기의 엘로힘이 33번 나오며, 여호와 엘로힘이 20번, 여호와가 10번 나온다.
①“여호와”와 “엘로힘” 사용에 있어서 규칙적인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여호와를, 어떤 경우에는 엘로힘을 사용함에 있어서 어떤 규칙이나 반복된 변화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②이름이 결합되어 나오는 경우는 문서설로 설명할 수 없다.
창세기 2장과 3장에서 20번이나 함께 결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엘로힘은 창조주 하나님을, 여호와는 구속주 하나님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 창조와 구속의 개념이 함께 들어있는 문맥 속에서는 엘로힘과 여호와가 함께 등장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문서를 구분할 것인가?
③문서설의 주장처럼 엘로힘과 여호와를 나누어 버린다면 문장이나 문맥이 절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문맥에 따라 각자의 강조점을 가지고 사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을 가자고 확대된 분해를 시도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본문을 절단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
⑤성경은 자주 이름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계속적인 반복의 단조로움을 피한다.
⑥어떤 경우에는 이름을 다르게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측면과 관계들을 제시하고 있다.
⑦또 한편으로 정확하고 빈번한 반복은 단조롭기는 하나 인상적이고 강조적인 용법으로 사용된다.
2. 반복과 중복에 대한 문제
문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오경의 기사들은 독특한 두 개의 특징을 가진 문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이 오경을 다른 문서설이 편집되어진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①성경에 많은 반복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러나 반복은 히브리문체에 있어서 하나의 특징적이다.
②문서설의 주장은 창세기 1장과 2장은 인간의 창조에 대해 서로 다른 설명을 하고 있으므로 이는 저자가 다른 두 개의 문서에 대한 증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두 기사는 완전한 다른 기사가 아니다. 둘 사이의 차이는 다른 목적을 보여준다. 두 가지 사건이라기보다는 하가지 사건을 두 가지 목적을 가지로 기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③족보들의 중복에 있어서도 다른 두 문서가 아니라, 이 두 족보는 다른 문서가 합쳐진 것이 아니다. 그 목적에 따라 그 내용도 달라지는 것이다.
3.문체의 차이에 대하여
문서설 학자들은 오경에 저자가 다른 여러 문서들이 있다는 것이 문체가 다양한 것에 의해 입증된다는 주장이다. 문서설자들에 의하여 J 문서는 이야기꾼 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의인적이고 친근하게 표현을 하고 있고 E는 하나님 대신에 천사가 말하게 하는 등 좀 더 초연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P는 연대, 족보, 목록 같은 것에 관심이 많고 문체가 열거식이고 기계적이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에 대해 몇 가지 반박을 하고자 한다.
①그들이 말하는 소위 그 저자들의 아무 문서도 보존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그들의 문체를 비교할만한 아무런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②그렇기 때문에 비평가들도 창세기 이외에서는, 그리고 창세기의 어떤 구절까지도 J와 E로 구분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단순히 JE라고 명칭을 붙인다.
③그들이 문체의 차이라고 한 것은 실상은 주제의 차이다. 주제에 따라 같은 저자라도 다른 문체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④실제로 하나의 작품 안에서 다른 문체들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지면의 한정으로 인해서 문서설을 자세히 비평하지 못함이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자료와 연구를 통하여 문서설의 오류와 무모함과 위험성을 역설하고 싶다. 이상에서 본 것과 같이 오경을 문서설의 주장대로 쪼개어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주제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 가하는 것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바른 자세로 오경을 레너티브의 관점 즉, 스토리 전개방식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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