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더 병들고 가난하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잘사는 기준을 잘살고 병들지 않는 데 두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독교인들이 더 병들고 가난하게 사는 모습 을 보고 난감해 하며 신앙생활을 거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찌 한 단면만 보고 판단을 쉽게 할수 있겠습니까 기독교 교인들중에는 가난하고 병든자들보다 부하고 건강한 자들이 교회안에는 보다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부 자와 건강한 사람만 다니는 곳이 아니고 병들고 가난한자 들도 함께 어우러 지는 곳입니다.
“네 궁핍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 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줄도 알아 모 든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4장11절-12절)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서 모두가 잘 살고 모두가 건강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교인들중에는 잘살지 못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불치의 병으로 질병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그렇다고 하여서 당신이 교회를 다니고자 하는 마음이 이러한 모습 때문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생각하기에 사람이 잘살고 못사는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돈과 명예라 생각할것입니다.
그렇다면 돈 많은 사람들이나 권세를 누린 사람들이 다 잘 살다가 죽어야 할텐데 전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돈 때문에 패가망신 한 사람들이 많으며 권세 때문에 마지막에 불행을 당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전직 대통령을 보면 권세는 원없이 누린지는 모르지만 퇴임후에 결과는 어떠합니까? 퇴임한 대통령들이 비리로 인하여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고 자녀들까지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모습들을 우리는 보았습니다.이러한 것을 보면서 잘 산다는 기준이 절대적으로 권력일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얼마전 우리나라의 굴지의 재벌기업의 회장이 자기 사무실에서 투신 자살하는 모습도 지켜보았습니다.이유야 어떻든 돈이 많다고 하여서 잘 산다는 보장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빈곤의 삶을 감사한 생】
성 프랜시스는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을 모르는 생활을 했으나 그러한 프랜시스의 눈을 열어준 것은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프랜시스를 이기심의 동굴에서 끌어내어 빛난 태양을 맞이하게한 이들이었습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물론 대개 육신적으로 가난하기만한 이들이었고 약하고 더러웠습니다. 그러나 프랜시스는 가난한 사람이 가난 속에서도 사랑할 수도 있고 역경에서 강해질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참다운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프랜시스는 자신의 집이나 명예 따위를 가지지 않고 가난과 결혼해서 평생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서약을 지켰습니다. 그는 주님처럼 가난해지고 그 가난의 의미를 터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절대적인 빈곤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프랜시스의 삶은 항상 감사와 자연에 대한 기쁨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가진 셈이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행복했고 그의 마지막 편지는 그의 주위에 있던 귀부인에게 보내졌는데 그 내용은 그의 옷에 기울 회색 천 조각을 좀 보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도 많았지만 죽을 때가 가까울 즈음 그의 거처는 쓰러져 가는 오두막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영원히 인간으로서 가난한 존재이며 이를 초월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힘으로 살아야 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마흔네 살에 그는 삶과 자연을 찬양하며 가난한 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품안에 깊이 안식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잘살고 못사는 기준이 부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진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에 자족할줄 알게 되기 때문에 물질이 많고 적음에 행복의 척도로 두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습의 단면을 보면
편리해졌어도 평안치는 않는 생활,
빠르게 다녀도 시원치 않는 마음,
이것 저것 가져봐도 허전한 나날,
어울려 살아도 가시지 않는 외로움......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 누구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듣고, 보고, 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답답할 뿐입니다.지금 우리는 물질 문명의 넘치는 혜택으로 부족함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잘살고 못사는 기준을 찾을수 없으며 하나님에게서 찾을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병에 절대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상한 음식을 먹어도 식중독에 안 걸린다고 말할수 없습니다.물론 때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병에 안걸리게도 하시고 걸리게도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질병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①죄 때문입니다(창3:16-19)
②사단의 시험입니다(욥2:7)
③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입니다(요9:1-3)
④노쇠했기 때문입니다(창48:1)
⑤사고때문입니다(왕하1:2)
⑥지나친 과로 때문입니다(빌2:25-26)
⑦세속적인 근심 때문입니다(전5:13-14,17)
이와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질병에 걸릴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하여 질병을 통해 경제적으로,신체적으로 고통을 주시기도 하며,또한 믿음을 시험하려교 사단에게 시험을 허락하여 사단이 질병을 가져다 주어 고통을 받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병의 원인을 알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병은 하나님께서 고쳐주실줄 믿는 것이 중요하고,사단이 주는 병은 싸워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질병에 대한 태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①우상이나 귀신에게 빌어 병을 고치려고 생각지 말아야 합니 다(왕하1:2)
②선한 사람도 악한 병에 걸릴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왕 하13:14,빌2:27)
③죄로 인한 징계로 질병이 주어졌을 경우 먼저 회개해야 합 니다.(민12:1-15)
④병중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범죄치 않도록 해야 합니다(욥 1:22,2:8-10)
⑤병을 위해 약을 쓰는 것을 죄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딤전 5:23)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항상 돌보시며 건강하게 자라도록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고난을 겪게하는데 그 고난이 질병일수도 있고 가난일수도 있습니다.왜 하나님은 이렇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땅에서 약하여 겨우겨우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친 세상에서도 능히 감당할수 있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때문 인것입니다.
사람들이 타락한 성격,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자기 교만, 탐욕, 육신에 의지하는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도 파괴해 버리고 자기 스스로의 운명도 파괴해 버립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고난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영원히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 먼저 타락한 인격의 찌꺼기를 제하시 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편안한 삶을 주셨다면 아마도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안일해져서 기도도 하지 않고 신앙생활에 나태해져 하나님에게서 떠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교회에 나가면 다 잘살게 되고 병도 고쳐진다고 하는데,내가 보기에는 못사는 교인도 많고 교인도 병들어 잘만 죽더라 하고 비방을 하시겠습니까?
이제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교회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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