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칼럼 모음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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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위대한 희망은 교회의 회복이다
집을 재산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재산의 이익을 따라 이리 저리 옮기기도 하고, 한 사람이 여러 채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을 가족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로 인식하는 분들은 가정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느냐? 부부의 행복이 넘치는 에덴의 동산인가? 아이들이 꿈을 꾸는 희망의 동산인가?” 이러한 행복한 에덴과 희망의 동산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집’에 대한 개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기에 남편과 아내가 에덴의 동산을 이룰 수 있고, 자녀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미래를 꿈꾸는 희망의 동산을 이룰 수 있으며, 지체들은 하나님의 꿈을 나눌 수 있기에 하나님의 집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신약교회 교인들은 그 집에서 교회들이 모였습니다. 교회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꿈을 이야기 했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나누었습니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교회를 가자, 교회에 다닌다. 교회를 건축한다. 대형교회를 꿈꾼다.”라는 말은 쉽게 이해되어지지만 “형제의 집에서 교회들이 모였고,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 교회들이 서로 문안하며, 교회들이 함께 하나님의 꿈을 꾸었다.”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은 교회를 말할 때 “교회를 가자, 교회에 다닌다. 교회를 건축한다. 대형교회를 지향한다.”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말씀 위에 교회를 세운다.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 형제의 집에서, 자매의 집에서 교회들이 모였고, 교회들이 서로 문안한다.” 이런 용어들로 교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골, 4:15절에서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고전, 16:19절에서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롬, 16:23절에서 “나와 온 교회 식주인(집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각 서신서의 마지막 장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신약교회에서들은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교회들이 있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집 밖에 있는 교회들을 다닙니다. ‘교회’라는 용어는 동일하게 사용하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말씀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교회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타락합니다.
우리의 관점과 전통과 제도로 만들어진 예배와 교회의 모습은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주님의 몸으로서의 교회,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 형제, 자매의 집에 거하는 교회로서의 친밀감이 회복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목회성공이라는 야망을 비전으로 포장하여 대형교회를 지향하고, 크고 화려한 건물을 짓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아름다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몰두하고 있다면 우리는 겸허히 제2의 종교개혁 앞에 서야할 것입니다. 교회의 회복으로 우리들의 집에서 교회가 함께 머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집을 사모합니다.
교만에 대한 4가지 정의
1. 부드럽지 않은 정의감을 말합니다.
바른 것, 정의로운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부드럽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정의감을 딱딱하게 표현하는 분에게는 '정의'보다는 '교만'이 연상됩니다. 그러므로 바른 것을 말하면서도 부드러움과 교양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남과 나를 바르지 못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정체성과 가치관을 확립하고, 자신의 재능을 살리려고 하는 구분은 필요하지만, 남에게는 싫은 행동을 하고, 자신은 좋은 행동을 원하는 구분은 불필요합니다. 자신이 당하기 싫은 일은 남도 당하기 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사장 루시엘은 제 자리를 떠나 하나님 자리까지 넘보다가 루시퍼가 되어 망했지만, 천사장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제 자리를 지켜 지금도 복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를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4.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줄 알지 못하면 아무리 겸손한 태도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가 삶의 근원도 되고 목적도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지만 겸손은 축복의 길잡이입니다
헷갈리고 의미 있는 얘기
옛날에 ‘모든사람’(Everybody), ‘어떤사람’(Somebody), ‘누구라도’(Anybody), ‘아무도’(Nobody)라는 이름의 네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한 가지 생겼고, ‘모든사람’이 그 일을 하도록 요청받았다.
하지만 ‘모든사람’은 ‘어떤사람’이 그 일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어떤사람’은 화가 났다. 왜냐하면 이 일은 ‘모든사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을 줄이야!
이 일은 ‘모든사람’이 ‘어떤사람’을 비난하고, 애초에 ‘누구라도’ 할 수 있었던 그 일을 ‘아무도’ 하지 않음으로써 무효가 되어버렸다.
이 네 사람은 여전히 서로의 잘못이라고 말다툼을 하고 있고 그 일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채로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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