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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칼럼 모음 NO.3

예림의집 2011. 3. 21. 07:23

예림의집 칼럼 모음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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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기독교 신앙인을 누구라고 정의해야할까? 성경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처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취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기에 그리스도인은 믿음에 의해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죄인을 의인으로 여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믿음에 의해서 가능했듯이 예수님의 모든 능력들도 믿음에 의해서 역사하였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9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들을 살펴보자. 중풍병자가 자신이 누었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 것도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같이 침상까지 들고 오는 열정이 아니라 중병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에 의해서였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지자마자 나음을 입은 것도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마 9:22)처럼 열 두해나 고생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여자의 믿음에 의해서였다. 두 맹인의 눈이 밝아진 것도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마 9:28-29)같이 병 고침에 대한 강렬한 외침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에 의해서였다. 이처럼 예수님의 모든 역사는 예외 없이 믿음에 의해서 작동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엄청난 능력이 우리들에게 흘러들려면 믿음으로 축복의 통로를 열어야 한다.

성경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같이 믿음이 분명히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서 생긴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매주 설교를 들어도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경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 아닌 인간의 말들을 설교를 통해 전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동적인 설교라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믿음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성경은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더라도 유익하지 못한 것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도 유익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말씀에 대한 지식은 늘어나지만 자신의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기 때문에 변화나 성장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같이 아브라함과 함께 복 받을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믿음에 의해서 작동되며, 하나님의 모든 축복도 믿음에 의해서 주어진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당신의 생각을 점검하라

 

남편과 자녀들이 마음을 바꿔서 좀더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도와주면 자기가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고 있었던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부인은 당연히 가족들이 그렇게 해주지 않아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지만 가족들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네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점검해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기 시작했지요.

그 결과 자신은 항상 자기의 유익만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설령 가족들이 달라진다 해도 또 다른 불만거리가 자기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 깨닫게 되었지요.
그러자 이 부인의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인지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진 겁니다.
이 때부터 이 부인은 빌립보서 4장 8절의 말씀대로 참되고 경건하고 올바르고 정결한 생각만을 마음에 담으면서

그렇지 않은 생각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성령의 열매인 사랑하는 마음을 얻게 되었지요. 이 마음은 우리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들의 일상도 그렇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생각을 점검해야 합니다.

언제 나도 모르게 사단이 가라지를 마음에 뿌려놓고 갑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고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되는 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트이면 그때부터 나를 흔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건에 대한, 정결에 대한 훈련을 날마다 해야 합니다.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만큼 값진 것은 없습니다.

 

 

용서한다는 것

 

용서란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관계 회복은 물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도 새롭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는 사실은 주님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기에 우리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자연히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의 삶을 살아야겠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용서보다는 과거의 쓰라린 기억을 잊어버림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그것은 사실 과거의 상처를 깊이 가둬두는 것일 뿐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대변혁인 용서의 은혜를 저버리는 잘못을 행하고 있는겁니다.

용서는 화해와도 다르고 또한 무조건 참는 것과도 다릅니다.

상처받은 감정의 찌꺼기를 덮어버리게 되면 그 상처는 분노가 되어 마음속에 잠재된 채 폭발할 날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용서는 또한 상대방의 잘못을 무조건 눈감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용서는 그 과정에 진통이 따릅니다.

그 과정을 용기 있게 통과한 후에 비로써 용서가 주는 참 기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 대상이 가족이든 아니면 가까운 이웃이든 간에

과거에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을 용서하라는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해야겠지요.

그래야만 내면의 평화를 회복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있게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신비

 

성경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합니다.

즉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통해 바라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면서도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 믿음은 사람들 사이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건이 됩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부모에 대한 믿음이 아니면 하루도 살 수 없고

오늘도 어떤 사람이 무사고 운전을 했다면

그는 이미 도로에 나와 있는 수백 명의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따라 운전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믿음은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문 앞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울부짖으면서도

'나의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순종하셨던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믿음의 삶을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이 믿음을 지키는데 방해가 되는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서 도우심을 청해야겠지요.

이 믿음을 유지할 때 우리는 삶 속에서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신비에 오늘도 더 가까이 다가서시기 바랍니다.

 

 

가서 네 눈을 씻어라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니이까?” 라고 묻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십니다.

그 때 그대로 순종한 이 소경은 눈이 뜨여 빛을 보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게 된 것이었지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다른 사람과 환경의 탓으로 또는 하나님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은 나 자신이 욕심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욕심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패하면서 외로움과 고통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고통 앞에 설 때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죄악을 따라 살아왔던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서야겠지요.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을 분명히 열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는 똑같은 명령을 받게 된다면 이 축복받은 소경처럼 그대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죽는 것 같으나 사실은 진정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