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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Well being)은 웰다잉(Well dying)입니다.

예림의집 2010. 6. 17. 10:06

웰빙(Well being)은 웰다잉(Well dying)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이야기는 이 땅 이야기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 땅에 부자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돈이 많아서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면서 살고 싶은 것이 이 땅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부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부자가 좀 나누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부자의 대문 앞에 가서 구걸을 하는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 이 땅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가난한 사람도 죽었고, 천년만년 살 줄 알았던 부자도 죽었습니다.

죽음으로 이 땅 이야기가 끝이 나고 하나님 나라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갔고, 부자는 괴로움이 있는 지옥으로 갔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다 지옥가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가 왜 지옥에 갔느냐? 가난한 자가 왜 천국에 갔느냐? 그 이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사는 바리새인들을 상징합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주신 율법을 나누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면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세리와 죄인들, 이방인들에게 그 율법의 말씀을 나누어주지 않고 오히려 개처럼 취급하고 무시하며 돌보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잘 모르기에 넉넉한 부자의 대문에 와서 좀 나눠달라고 구걸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오지 않고 오히려 개가 와서 그 헌데를 핥았습니다.

그들은 개처럼 무시당하고 있는 세리들, 죄인들, 이방인들이지만 그들이 바리새인에게 있는 율법의 말씀을 사모했고,

부스러기라도 얻고자 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음을 암시합니다.

웰빙(Well be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고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웰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웰다잉(Well dying)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

이러한 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웰다잉을 준비하는 사람만이 참다운 웰빙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 웰다잉을 준비하지 못하고 호화스럽게 즐기는 자기의 삶만 추구하다가

갑자기 죽어서 지옥에 간 것입니다.

이 땅에서 바르게 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라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창조세계와

시간, 재물, 능력과 은사들,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마땅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자신만을 위하여 호화롭게 즐기는 것은 웰빙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웰다잉의 삶이 나눔으로 이루어지는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이 땅의 삶을 웰빙의 삶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부자가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가진 돈과 은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호화롭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느라고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부자의 죄입니다.

오늘도 나의 대문 앞에 누군가가 나의 것을 나누어 주길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주위를 살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나눔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웰다잉을 잘 준비하므로 웰빙하는 삶을 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들을 기대합니다.